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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진화하는 사기범죄···"아이돌 팬을 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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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원 비공굿을 구매했는데 아직 못 받았어요. 판매자와 연락도 끊긴 상태구요.”

김모양(16)은 지난 3일 아이돌그룹 워너원의 ‘비공식 굿즈’를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판매자가 알려 준 계좌로 입금한 뒤 택배 운송장 번호를 받았지만 조회 되지 않는 번호였다. “착오가 있는 것 같다.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던 판매자는 그 후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김양은 “경찰에 신고할 때를 대비해 운송장 번호를 주고, 착오라고 말한 것 같다”며 “이런 방식으로 당한 피해자가 나 말고도 더 있다”고 말했다.

굿즈란 아이돌의 사진이나 이름, 그룹명 등을 넣어 만든 옷이나 휴대폰 케이스 등을 뜻한다. 소속사가 판매하는 공식 굿즈는 가격도 비싸고 종류도 적은 반면, 비공식 굿즈는 가격도 싸고 ‘제작의뢰’도 가능해 인기가 높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비공식 굿즈를 검색하면 판매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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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SNS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비공식 굿즈 판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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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공식 굿즈는 아이돌의 초상권, 퍼블리시티권 등을 침해한 것으로 불법이다. 소속사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팬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의 사각지대에서 사기범들이 활개를 친다. 이미 SNS에는 사기범의 계좌번호나 대화내용 캡쳐 사진을 올리고 ‘주의하라’는 글들이 많다. 또 ‘피해자를 찾는다’는 내용도 많은데 소액 사기의 경우 피해자가 다수일 때 수사가 쉽기 때문이다.

김양은 “아이돌 팬을 상대로 한 사기는 몇만원 정도의 소액 사기가 많아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팬질을 하다 보면 한 두번은 사기범을 만난다고 할 정도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아이돌 팬심을 이용한 사기는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그 수법도 치밀해지고 있다. 이 중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례는 티켓양도 사기다. 지난달 25~26일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방탄소년단의 서울 콘서트에는 티켓 양도 사기가 잇따랐다. SNS에는 사기범의 계좌번호, 사기 수법 등을 공개하는 계정이 만들어지고 피해 제보도 받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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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콘서트 관련 사기 사례를 공개한 SNS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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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수법도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했다. 사기범들은 포토샵으로 만든 가짜 티켓이나 예매 과정을 캡쳐한 사진을 중고거래 사이트, SNS 등에 게시한다. 해당 글에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주소를 남긴다. 구매 희망자가 채팅방에 접속하면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입금이 완료되면 잠적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계좌번호로 추적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법도 등장했다. 우선, 정상적으로 티켓을 양도하려는 사람에게 접근해 구매할 것처럼 속인 뒤 계좌번호를 받는다. 이 계좌번호를 피해자에게 알려주고 ‘입금통장표시내용’에 특정 이름으로 입금하게 한다. 입금이 완료되면 계좌번호 주인에게 연락해 “송금을 잘못했으니 특정 이름으로 입금된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방식으로 2~3개 계좌를 거치면 피해자는 사기범을 특정하기가 어려워진다.

티켓양도 사기에는 팬들의 심리도 이용된다. 피해자 신유진양(18)은 “티켓 구매에 실패한 방탄소년단 콘서트를 ‘정가에 판매한다’는 글을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며 “연락처라도 알아내려 했지만 ‘못 믿겠으면 다른 사람에게 팔겠다’는 말에 입금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기 수법은 비슷하지만 유형이 다른 사례도 있다. 돈을 받고 아이돌 사진을 대신 촬영해준다고 속이는 이른바 ‘대리찍사 사기’다. 이 사기도 카메라를 인증하거나 콘서트 티켓을 인증하며 시작된다. 사기범들은 고속·망원 기능을 갖춘 카메라·렌즈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팬들을 유혹한다. 피해자가 돈을 입금하면 핑계를 대고 잠적하는 방식이다. ▶[관련기사]10대 소녀 팬심 울리는 아이돌 '대리찍사'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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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팬들이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뮤직뱅크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출근길을 지키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사기 피해를 호소하는 아이돌 팬은 늘어나고 있지만 마땅한 피해예방·구제법은 없다. 인터넷 상에는 “소액사기는 사기범을 잡더라도 돈은 돌려받기 힘들다”거나 “경찰에 신고하려면 피해 액수가 커야 한다”는 정보만 공유된다. 실제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한 피해자들은 “소액이라 귀찮아서”, “신고해도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고 해서”, “신고절차를 잘 몰라서”라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누리꾼은 “미성년자는 부모님 동의가 있어야 고소가 가능하다”며 “몇만원 돌려 받겠다고 부모님을 경찰서에 오시게 할 수는 없다. 결국 미성년 아이돌 팬은 사기범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사기 금액과는 관계없이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 절차대로 수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수사관이 피해자를 상담해 사기 사건인지, 단순 오해가 있었던 것인지를 판단한다”며 “수사 효율을 따지는 과정에서 의미 전달이 잘못 됐을 수는 있지만 ‘돈을 포기하라’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인터넷 거래는 안전결제를 이용하고, 구매 물품도 직접 만나서 받는 것이 좋다”며 “사기를 당했다면 가까운 경찰서 사이버수사대로 직접 방문해 판매자 정보나 대화 내용 등을 진술하라”고 말했다.

티켓 양도 사기를 당한 이모양(18)은 “아이돌 팬 관련 사기는 사기범을 비난하는 사람보다 ‘빠순이’가 멍청하다며 비웃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며 “피해자를 비웃는 분위기가 사기범의 죄책감을 덜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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