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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위기의 한복]② 메이드인 차이나, 전통 한복 맥 끊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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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메카’ 광장시장, 추석 앞두고도 ‘썰렁’
폐백 문화 줄면서 한복 설 자리 좁아져…유명 브랜드 한복도 위기
대학도 연구 외면…교육-문화-산업 선순환 생태계 구축해야

조선일보

100년 역사를 지닌 광장시장 한복 상가. IMF 무렵 300개 정도였던 한복집은 현재 60여 개로 줄었다./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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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한복 시장 규모는 약 1조3000억원이다. 이 중 섬유·원단을 제외한 도·소매 한복제품 시장은 6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75%가 가족 단위로 운영하는 소규모 사업체로 경영 상태가 열악하다. 최근엔 한복 수요가 줄면서 인건비가 싼 동남아에서 한복을 짓거나, 아예 한복 장사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추세라면 한복의 발전은커녕 전통 한복의 맥이 끊길지도 모른다고 불안감을 호소한다.

◇ "요즘 누가 한복 사 입어요" 파리 날리는 한복 시장

추석 연휴가 시작된 22일, 서울 종로 광장시장 주단한복부를 찾았다. 한복 도소매 매장과 원단 매장, 제작 공방이 모여 있는 이곳은 ‘한복의 메카’라 불린다. 북적이는 먹거리 골목과 달리 한복 상가는 썰렁하기만 했다. 22살 때부터 일을 해 50년 넘게 한복 상가를 지키고 있다는 영락주단 사장(75)은 "명절이라고 누가 한복 입나? 여기 오는 사람은 혼수 한복을 맞추러 오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니 점점 사람이 줄고 있다. 장사가 안돼 적자 본 지 오래"라고 하소연했다.

그나마 아동 한복을 파는 곳은 장사가 좀 되는 것 같았지만, 이마저도 대여점이나 값싼 인터넷 쇼핑몰에 손님을 빼앗겼다고 했다. 한 상인은 "일주일에 1~2벌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이라며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문을 닫는 집도 많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IMF 무렵 300개에 달했던 광장시장 한복집은 현재 60개 정도밖에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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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주단 사장은 ”집에 있으면 답답해 가게에 나와 있기는 한데, 손님이 없어 적자 본 지 오래”라고 하소연했다./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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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엔 중국에서 만든 한복을 한국산으로 라벨 갈이 하는 장면이 한 방송사의 카메라에 잡혀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 상인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한복을 생산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기성복뿐만 아니라 맞춤 한복도 해외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 폐백 문화 줄면서 한복 수요 급감…유명 브랜드도 위기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한복 제조업체 수는 4506개에서 2014년 3054개로 32.2% 줄었다. 종사자 수도 6262명에서 4478명으로 28.5% 감소했다.

유명 브랜드 한복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2015년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했던 이혜순 디자이너의 ‘담연’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매장을 철수했다. 당시 롯데백화점은 "일본 백화점에 기모노 매장이 있듯, 한복 매장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떠들썩하게 한복 매장을 열었다. 이혜순 디자이너는 "100% 맞춤 제작해 판매하는 한복의 특성상 백화점이 원하는 만큼의 수익을 내기 어려웠다. 사명감으로 버텼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이로 인해 경제적 손실도 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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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의 폐백 문화가 사라지면서 전통 한복의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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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쌍화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의 영화 의상을 제작하고, TV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 씨 아들 대한·민국·만세 군이 입은 한복을 짓는 등 명성이 높은 한복 디자이너다. 하지만 그런 그도 한복 업계의 어려움을 실감한다. 그는 "전통 한복이 지금껏 명맥을 이어 온 건 결혼식 폐백 문화 덕분이었는데, 혼례 문화가 간소화되고 폐백도 생략되면서 한복을 입을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원단 짜는 공장도 못 버티고 문을 닫는 실정이다. 한복 활성화 명목으로 축제나 이벤트를 지원할 게 아니라, 한복 종사자들이 계속 일할 방안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한복 가르치는 대학 전통복식과 한 곳도 없어…

한복 수요의 급감은 한복 인프라의 축소로 이어진다. 현재 대학에서 한복을 전공으로 가르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유일하게 한복을 가르쳤던 배화여대 전통의상학과는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2016년 폐과됐다.

박선영 한복진흥센터 팀장은 "한복과 같은 전통 기술 학문은 보호 과목으로 지정해 육성해야 한다"며 "학생 수가 적더라도 꾸준히 학술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학점, 취업 등에 이익을 주는 등 정책적인 협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통 기술이 제대로 전수되어야 문화가 성장하고, 수요도 늘 거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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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신주코 게이오 백화점의 기모노 매장./게이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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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성인식 때 기모노를 입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미혼 여성의 첫 정장=기모노’라는 개념이 있을 정도다. 결혼식, 축제 등 전통 복식을 입을 기회가 많아 백화점에서도 기모노 매장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문가를 양성하는 공인시험과 기모노 문화를 교육·보급하는 기모노 컨설턴트 협회도 있다. 반면, 한복은 일상복이 아닌 행사용 옷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럭셔리 마케팅 업계 권위자인 장 노엘 카페레 파리경영대학원 교수는 "문화유산과 전통이 있으면 명품이 나온다. 국가 이미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만들어가는 현재형"이라고 말했다. 한복 시장의 위기는 우리 문화의 위상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위태롭다.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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