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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애 안 낳니?" 잔소리에…"노후는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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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결혼 언제", "취직 했니" 등에 스트레스↑…역공(逆攻)하다 자칫 갈등 불거지기도]

머니투데이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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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생 정준영씨(30·가명)는 지난해 추석을 떠올리면 지금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친척 1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한꺼번에 잔소릴 들었다. 마치 '인사 청문회' 자리 같았다. 얼추 기억을 더듬어보면 "서른이 다 돼 가는데 취업은 어렵니?", "그러게, 결혼도 늦어질텐데 만나는 사람은 있니?", "그래도 아무데나 들어가면 안된다", "차라리 공무원 준비하면 어떠니?" 등이다. 예의 바른 정씨는 대놓고 싫은 티도 못 내고 웃어 넘겼다. 그는 "알아서 하니까 제발 좀 냅뒀으면 했다"고 토로했다.

'잔소리 시즌'인 추석 연휴가 돌아왔다. 오랜만에 모인 터라 서로 안부를 묻는데, 자칫하면 이 한 마디가 당사자에게 비수가 돼 꽂힌다. 이에 명절을 앞두고 친척들 잔소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를 묻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말 듣기 싫지만, 대놓고 불쾌한 티를 냈다간 갈등이 생길 수 있어 조심스럽단 반응이다.

명절 잔소리는 성별·연령 불문이다. 통상 각자 겪는 인생 시기에 맞게 제공된다. 학생 때는 공부, 고3 때는 입시, 대학생 때는 취업(여기서 남자면 군대 추가), 취업하면 결혼, 결혼하면 첫째 출산, 첫째 낳으면 둘째 출산, 그것도 다 끝내면 아이에게 관심사로 옮겨간다.

문제는 이를 주고 받는 분위기가 편치 않다는 것. 당사자가 해당 사안에 대해 고민이 많을 땐 더 민감해진다.

주부 이현정씨(36)는 지난해 추석 때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가 가시방석이었다. 음식을 준비하며 얘길 나누는데, 한 친척이 "근데 좋은 소식 있어? 애는 언제 낳을거야?"라며 꼬치꼬치 물어본 것. "이제 낳아야죠"라며 얼버무렸지만 잔소리가 잇따랐다. "빨리 낳아야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워낙 안 낳으려고 해서 문제야", "하루라도 젊을 때 키워야 편해" 등이었다.

사실 이씨에겐 사정이 있었다. 반년 이상 아이를 갖기 위해 시도했지만, 잘 생기지 않았다. 난임인 것 같아 최근 검사까지 받은 참이었다. 속사정도 모르는 친척의 속사포 같은 잔소리에 이씨는 그날 밤잠을 설쳤다. 그는 "관심이 아니라 쓸데 없는 오지랖이고, 더 나아가선 배려가 없는 것"이라며 꼬집었다.

정작 잔소리를 하는 당사자들은 별 생각이 없거나, 관심을 주고 격려해주기 위해서 했다는 경우도 많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 장모씨(67)는 "잔소리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잘됐으면 하고 걱정해서 건네는 말들"이라며 "오래 못 봐서 안부가 궁금하지 않느냐. 그래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처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일상적인 건 그냥 웃으며 참고 넘기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말을 아껴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정도다. 아예 잔소리가 싫어 피하는 이들도 있다. 마주치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역공격'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주부 송모씨(38)는 시댁에 갔다가 시누이가 "집 못 사서 어떻게 하느냐"는 참견에 "결혼은 언제 하냐", "만나는 사람은 있냐"고 응수했다. 직장인 서모씨(50)는 "직장 언제까지 다닐 수 있느냐"는 친척들 잔소리에 "노후 준비나 신경쓰라, 잘들 하고 있냐"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자칫 관계를 해칠 수 있다.

정유희 작가는 저서 '듣고 싶은 한마디, 따뜻한 말'에서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고 싶을 때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바로 조언과 충고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라며 "꼭 해야할 경우에는 표현을 잘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먼저 묻기 전엔 조언을 안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정 작가는 "내게 적용된다 해서 상대방에게도 강요하는 건 오만한 태도라 할 수 있다. 자기 기준으로만 판단하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조언을 하려면 먼저 상대방 입장과 마음을 잘 헤아려 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형도 기자 hu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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