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평소엔 뭐하다가…명절 응급실 들이닥친 ‘효도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3)
코드 클리어는 응급실에서 응급상황이 종료된 상태를 말한다.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의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편집자>


중앙일보

명절엔 병원마저 한가롭지만 응급실은 다르다. 병원이 모두 쉬니 사소한 질병까지 모두 떠안는다. 평소의 두세 배 넘는 환자가 온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명절이다. 주변 건물 불이 모두 꺼졌다. 번화가 상점도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고향으로 내려가고 거리엔 발소리가 줄었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급한 경우가 아니면 수술 일정이 없다. 외래도 열지 않는다. 입원 환자도 퇴원이나 외출을 나간다. 명절만큼은 집에서 보내기 위해서다. 의료진도 상당수가 명절을 쇠러 갔다. 의사도 없고 환자도 없다. 명절엔 병원마저 한가롭다.





명절만 되면 지옥으로 변하는 응급실
응급실은 다르다. 병원이 모두 쉬니 사소한 질병까지 모두 떠안는다. 평소의 두세 배 넘는 환자가 온다. 그렇다고 인력이 충원되는 것도 아니다. 억지로 시킬 수도 없고 자원자가 있을 리는 더더욱 없다. 명절에 쉬고 싶은 건 누구나 똑같다. 굳이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들 사람은 없다. 피할 수만 있다면 나도 도망치고 싶다. 하루 일하면 사흘 앓아눕는 게 명절 응급실이다. 1년에 2번 어김없이 찾아오는 지옥. 공항과 함께 명절에 더 북적이는 곳 바로 응급실이다.

명절에만 볼 수 있는 환자가 있다. ‘효도병’이다. 특별히 아픈 곳 없는 부모를 자식들이 응급실로 모시고 오는 경우다. 하필 가장 바쁜 명절에 말이다. 의료진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명절에 가장 보기 싫어하는 환자 1순위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찾은 부모가 수척해 보여 급하게 모시고 왔단다. 환자 상태를 살펴보니 딱히 할 일이 없다. ‘입맛이 없으시다’ ‘기운이 없으시다’…. 증상은 제각각이지만 해줄 게 없기는 매한가지다. “다음에 외래로 오세요. 여긴 급한 불만 끄는 곳이에요. 응급상황이 아니면 해줄 게 없습니다.”

중앙일보

명절에만 볼 수 있는 환자가 있다. '효도병'이다. 특별히 아픈 곳 없는 부모님을 자식들이 응급실로 모시고 오는 경우다. 의료진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명절에 가장 보기 싫어하는 환자 1순위다. (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쉬이 물러나는 보호자는 드물다. 병명을 모르겠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사를 해달라 한다. 건강검진이라도 해달라 한다.

수액이라도 놔달라는 아들, 힘들어하는 아버지
“응급실에선 안되는 검사입니다.”

“영양제라도 놔주시오.”

“응급실에 영양제가 어딨나요?”

“그럼 포도당 수액이라도 놔주시오.”

“차라리 병원비로 소고기 사드시는 게 영양이 더 많습니다.”

“당신 의사 맞소?"

하필 만만치 않은 보호자가 걸렸다.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아버지 상태를 보란다. 이렇게 안 좋은데 그냥 집에 모시고 가라니 그러고도 당신이 의사냐고 화를 낸다. 시비가 붙을 기세다. 얼른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보호자와 투덕거리는 데 낭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명절답게 환자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아직 얼굴조차 못 본 환자도 있었다. 이러는 사이 누군가는 숨이 넘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하는 대로 포도당 수액을 처방 내주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응급실엔 침상이 바닥난 지 오래다. 환자는 빈 침대를 배정받지 못했다. 숨넘어갈 듯 소란스러운 응급실, 그리고 그 구석의 조그만 간이 의자. 환자는 거기 앉아 몇 시간 째 의미 없는 포도당 링거를 맞았다.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러다간 진짜로 없던 병이 날 것으로 보였다. 다행히 보호자의 태도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처방했다. 퇴원.

오랜만에 찾은 부모일 것이다.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세상일이 다 그렇듯 효도 또한 한 방에 해결되진 않는다. 응급실 한번 모셔온다고 건강을 살 수 없다. 자식들의 자기만족에 불과할 따름이다. 정말 부모의 건강을 위한다면 평소에 챙길 일이다.

중앙일보

명절 연휴 동안 쉬지 않고 바쁘게 돌아가는 한 대학병원 응급실.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앰뷸런스가 들어왔다. 한눈에 보아도 환자 상태가 심각했다.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다. 환자는 의식이 혼미해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하루이틀새 이 지경이 되었을 리 만무했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안 좋았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명절이라 집에 왔는데, 많이 안 좋아 보여 얼른 모시고 왔습니다.”

“평소 상태는 어느 정도였죠? 지병이 있었나요? 혹시 드시던 약이 있었나요?”

“전화하면 항상 잘 있다고만 하셔서….”

가족은 많았지만 환자 상태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단서가 될만한 정보가 하나도 안 나왔다. 이러면 검사가 많아지고 치료가 더뎌진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데 답답했다. 연신 보호자를 채근해보지만 서로 미루기만 했다.

부모 상태의 책임소재 놓고 싸우는 형제들
“너희들은 가까이 살면서 가끔 들여다보지도 않고 뭐한 거냐?” “아니, 형님은 아들 아니요? 그러는 형님은 전화 한 번이라도 해봤소?” 형제는 책임소재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조금 있자 아내들까지 나서서 소란이 커졌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차피 이 사람들에게 환자에 대한 정보를 더 얻기는 틀렸다. 진료에 방해만 된다. 환자 안정을 이유로 보호자들을 쫓아냈다. 밖에서 싸우든지 말든지.

환자는 오랜 시간 병원 신세를 졌다. 여기저기 문제가 심각했다. 손 쓰기엔 이미 많이 늦었다. 좀 더 빨리 병원에 왔어야 했다. 그랬으면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환자는 잠깐 정신을 차렸는데, 그 와중에도 자식들을 걱정했다. 자기는 괜찮다며 아들들에게 인제 그만 집에 돌아가라 했다.

“직장 일도 바쁠 텐데….” 환자는 되려 미안해 했고 그 모습에 자식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염없이 눈물만 떨구었다. 그리고 며칠 후 환자는 떠났다. “내가 더 자주 찾아뵀어야 했는데….” 자식들은 시신을 붙잡고 오열했다. 울음엔 후회가 담겨 있었다. 미련은 남은 자의 몫이다.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semi-moon@hanmail.net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