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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왜 우리는 남북정상의 백두산 등정에 열광할까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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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를 통해 본 3차 남북정상회담

세계일보

3차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된 지난 18일,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의 가장 번화가인 려명거리로 이끌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카퍼레이드를 펼쳤습니다. 려명거리는 김정은 시대에 변화된 북한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이날 목란관에서 열린 만찬에 앞서 정상회담을 기념한 선물이 공개됐는데, 문 대통령은 대동여지도를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날인 20일, 두 정상은 함께 백두산을 올랐습니다. MBC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2.2%가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북 정상의 백두산 등정을 꼽았다고 합니다.

정상회담의 이런 주요 장면을 복기하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지도예찬’을 떠올렸습니다. 대동여지도가 정상간 선물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전시회를 찬찬히 살펴보니 고지도를 통하면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장면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보다 풍부하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가 백두산에 함께 선 남북 정상의 모습에 왜 그렇게 감격했을까, 라는 질문의 대답을 찾는데서 시작해봅니다.

세계일보

보물 제1537-1호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의 백두산 부분


◆백두산의 기운을 받아 뻗어나간 한반도의 산줄기

지도는 국토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 땅이 품은 역사, 그것을 보는 관점까지 드러내 계관을 형성하고, 표현합니다. 이를 전제로 고지도를 보면 백두산을 ‘민족의 성지’으로 여기는 역사적 연원을 뚜렷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등장해 많은 인기를 누린 ‘해좌전도’(海左全圖)에서 백두산은 “한 집안의 시조처럼 강조되며 산줄기의 출발점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세월을 훨씬 거슬러 올라가도 이런 인식은 마찬가지입니다. 1557년에 제작된 ‘조선방역지도’에서 백두산은 유일하게 표현된 산입니다. 전국의 산줄기는 백두산에서 전파된 땅의 기운을 받아 국토의 동쪽 등줄기로 뻗어내립니다. 압록강과 두만간, 송화강이 백두산에 발원했다는 점도 표시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을 우리 국토의 뿌리로 여기는 건 풍수지리사상과 관련이 깊습니다. 풍수지리는 길흉화복을 점치는 민간의 속설에만 머물지 않고, 자연관의 한 형태로 기능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한반도는 백두산을 조종(祖宗)이며 산맥은 뼈대, 강줄기는 혈맥이 됩니다. 국토를 생명을 가진 신체와 같이 본 것입니다.

김정호가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 ‘대동여지전도’에서 백두산을 이렇게 표현됩니다.

“…요동 들판이 펼쳐진다. 들판을 넘어 우뚝 솟은 것이 백두산이니 조선 산맥의 으뜸이다. 백두산에는 세 층이 있으니 높이가 200리나 되고 가로로 1000리에 걸쳐 있다. 그 꼭대기에 큰 못이 있는데 달문(達門)이라 부른다.”

세계일보

대동여지도


◆“지도는 백성과 나라를 다스리는 큰 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민생을 편안히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는 당대 지식인들의 공감과 비약적으로 발전한 18세기 조선 지도학의 성과가 결집돼 이루어진 가장 우뚝한 성취입니다.

김정호는 조선의 국토를 남북 120리 간격의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의 지도를 1권의 첩으로 완성했습니다. 각 첩은 동서 80리를 기준으로 펴고 접을 수 있게 했죠. 22권의 첩을 모두 연결하면 가로 3.8m, 세로 6.7m의 대형 전국지도가 완성됩니다. 북한에 선물한 대동여지도는 가로 4.2m, 세로 9.3m 크기라고 하니 원본보다 큰 것을 따로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산과 강은 크기와 중요도, 흐름 등에 따라 섬세하게 표현했고 행정, 국방, 경제, 교통 등의 다양한 지식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남북정상회담의 선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김정호가 지도에 담았던 의미와 역할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지도를 “세상이 어지러우면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사나운 무리를 제거하며, 시절이 평화로우면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도로 천하의 형세를 살필 수 있고 지리지로 역대 왕조의 역사를 알 수 있으니, 이는 실로 나라를 다스리는 큰 틀”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이끌어야 할 남북의 지도자들이 대동여지도를 보며 곱씹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계일보

평양성도


◆려명거리와 평양성도, 최고지도자의 선전물(?)

북한 당국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카퍼레이드 동선을 려명거리로 정한 데는 평양의 발전상을 남한은 물론 세계 각국에 보여주려는 의도가 작용했을 겁니다. 물론 그것은 김 위원장의 업적으로 선전되겠죠.

카퍼레이드에 담긴 이런 의도는 조선시대에 평양을 그린 지도가 종종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근대에는 임금의 업적과 체제의 효율성를 표현하는 도구로 지도가 사용되었습니다. 평양은 종종 이런 지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조선은 수도인 한양과 함께 감영(監營·조선시대 각 도의 관찰사가 거처하는 관청)이나 군기지가 있는 평양, 함흥, 전주, 진주 등 지방 주요 도시의 모습을 지도로 그렸습니다. 회화 기법을 활용해 감상의 대상으로까지 승격시킨 이런 지도는 도시의 풍수 상 이점을 강조하고 관청, 학교, 문루 등을 그려 유교적 덕치(德治)가 실현되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또 민가와 시장은 풍부한 물산, 윤택한 살림살이 등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태평성대’가 당대에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선전물이라고 할까요.

평양지도는 여러 차례 제작되었습니다. 16세기 명종은 ‘평양도’를 ‘한양궁궐도’, ‘전주도’와 함께 병풍으로 만들게 했습니다. 정조는 1782년 평양전도의 제작을 지시했습니다.

전하는 평양지도를 보면 조선시대에 성인으로 추앙된 기자(箕子)가 실시했다는 정전제가 구현된 듯한 풍경을 평양성 외곽에 묘사했고, 감영의 위용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수많은 관청 건물을 그렸습니다. 모란봉, 영명사, 부벽루 등의 명소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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