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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일본 잡지 생존의 활로는 혐오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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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초45 사태로 본 일본의 출판 시장

성적소수자 혐오 조장 특집 내 파문

일본 출판 시장 불황이 배경



한겨레

일본 월간지 <신초45>가 성적 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글을 잇달아 실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역사가 120년이 된 일본의 대표적 출판사 신초샤가 논란을 오히려 반기는 듯한 태도를 취한 이유는 무얼까?

파문의 시작은 일본 자민당의 스기타 미오 의원이 지난달 발행된 <신초45> 기고문에 “엘지비티(LGBT·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커플을 위해 세금을 쓰는 것이 찬동을 받을 수 있나. 그들은 아이를 만들 수도 없다. ‘생산성’이 없다”는 글을 실으면서부터였다. 스기타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가 도쿄 자민당 본부 앞에서 열렸고,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는 “국회의원은 국민과 사회의 다양한 비판에 직면한다는 것을 확실히 자각하고 책임 있게 말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같은 자민당 의원인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은 “저런 발언이 자민당 내에서 나왔다는 것이 슬프다. 그런 한편, 일본에서는 다양성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깊게 따지면서 생각한 적이 없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신초45>는 10월호에 ‘스기타 미오. 논문 그렇게 이상한가’ 제목으로 스기타 의원의 발언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은 특집을 실었다. 10월호 발간 뒤에는 파장이 더 커졌다. 와카야마현에 있는 서점 ‘책방 프라그’는 19일 매대에서 <신초45>뿐만 아니라 이 잡지를 발행하는 출판사인 신초샤의 책 모두를 치워버렸다고 밝혔다. 신초샤의 공식 트위터 사이트 중 한 곳에서는 <신초45> 특집을 비판하는 내용의 트윗을 리트윗 하는 일이 벌어졌다. 신초샤 내부 직원까지도 이번 특집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는 셈이다. 사태가 너무 크게 번지자 신초샤 사장 사토 다카노부는 21일 이번 특집에 대해서 “너무나 상식을 벗어났으며 편견이 드러난 표현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는 차별적 표현에 대해서 충분히 배려하겠다”며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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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림수는 ‘엔조 마케팅’

일본에서는 <신초45>가 성적 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특집을 꾸린 이유는 철저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이른바 ‘엔조(炎上) 마케팅’이라고 본다. ‘엔조’는 일본어로 ‘타오른다’는 뜻인데 크게 논란이 된다는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신초45>가 일부러 논란을 만들어서 잡지 판매 부수를 늘리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신초45>가 엔조 마케팅 전략을 사용한 이유는 전반적인 잡지 시장 불황으로 판매 부수가 나날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잡지협회에 따르면 이달 4월부터 6월까지 평균 발행 부수는 1만6000부로 10년 전의 40% 수준에 그쳤다.

<.마이니치신문>은 익명의 신초샤 관계자가 “지난해 가을부터 회사 상층부가 잡지 발해부수 하락에 대해서 심하게 꾸짖었다. 우파적 성향이 강한 타사 잡지가 부수가 늘었다는 이야기도 잡지 편집부에 전달됐다. 결국 이(우경화) 방향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초45>는 1982년 45살 이상 중년과 노년층을 독자층으로 하는 잡지로 창간됐다. 공식 사이트에는 잡지 편집방향에 대해서 “조금 위험하면서 깊고 스릴 있는 잡지.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적혀있다. 지난해 2월호에는 ‘병의 인생학’이라는 제목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실어서 호평을 받았지만, 이후 우경화 가속화를 바꾸지는 못했다.

■ 신초샤는 어떤 출판사

신초샤는 1896년 창업한 회사로 문학 관련 책을 많이 출판해왔다. 다야마 가타이 같은 자연주의 문학 작품을 많이 출판했다. 1904년에 문예지 <신초>를 창간한고 1947년에는 소설을 다루는 잡지 <소설신초>를 창간했다. 일본 문학을 떠받쳐온 출판사 중 한 곳이다. <아베 정권의 인터넷 전략> 같은 책을 쓴 기자 쓰다 다이스케는 <마이니치신문>에 “(논란이 된 10월호가) 매진이 돼도 이익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출판사인 만큼 ‘설마 신초가’ 같은 비명이 안팎에서 들린다”고 말했다. 신초샤는 1956년 주간지인 <주간신초>를 창간했는데, 이 잡지는 일본 왕실 관련 사생활 보도 등 가십성 보도가 많다. 또한, 이 잡지에는 우파 인물의 칼럼도 자주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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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편집자가 맞아?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책과 잡지를 내는 일은 신초샤뿐만 아니라 일본 출판계의 전반적인 문제다. 지난해 일본 종이 출판 시장(잡지 포함) 규모는 1조3701억엔(약 13조 5631억원)에 그쳐 전년도보다 6.9% 줄었다. 전성기였던 1996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2012년께부터 혐한·혐중 서적 출판이 붐을 이루면서, 출판사들이 그나마 돈이 되는 혐한·혐중 책 출판에 열중하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고단샤)이다. 미국인 변호사 켄트 길버트가 쓴 이 책은 지난해 신간·논픽션 부문 최다 발행 부수(47만부)를 기록했다. 올해 초엔 속편도 나왔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한국과 중국이 일본보다 열등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아사히신문>는 올해 초 이 책 출판에 대해서 출판사 편집자가 도쿄 신바시 술집에서 사람들이 일본인은 한국인·중국인과는 다르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기획된 책이라고 전했다. 편집자는 일본인은 서양인에게 약하다는 점에 착안해 일본 거주 미국인에게 책을 써달라고 옹호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 서양인 저자가 일본을 옹호하는 내용의 책이 많이 나왔다.

철저히 상업적 계산에 따라서 책을 만들기 때문에 같은 출판사의 같은 편집자가 전혀 다른 방향의 책을 내는 일도 있다.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책을 낸 한 저자는 최근 도쿄 시내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내 책을 만든 편집자가 혐한·혐중 책도 만들고 있었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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