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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한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쉬운 것 하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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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6월 21일 예멘 난민 무하메드씨가 1살된 아들과 함께 제주시의 임시거처 인근의 포구를 찾았다./정지윤기자


지난 19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 난민인정자 처우 현황보고대회’에서 비좁은 난민 심사 관문을 뚫고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난민인정자’의 삶이 소개됐다. 난민 신청자들은 수백장의 증거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 조사를 거친 뒤 오랜 기다림 끝에 난민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1차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재심을 받거나 법정 다툼까지 벌여야 생명과 탄압을 피해 한국에 온 국제법에 따른 난민이 될 수 있다. 지난 5월 말까지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4만470명 중 839명이 난민 지위를 인정 받았다.

하지만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난민 지위를 인정 받은 이들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고생한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한국살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간단한 행정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자녀를 낳아 기르고 학교에 보내는 일, 직업을 구하고 안전한 가정을 꾸리는 일 등 어느 것하나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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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난민들이 7월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2018 난민의 목소리 한 마당’을 열어 난민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있다. /김영민 기자


아래 내용은 난민 인정자의 생활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한국난민인권연구회 활동가들이 국가국가인권위원회의 협조를 받아 인터뷰한 난민인정자 11명의 실제 경험담을 ㄴ국 출신 난민 ㄱ씨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인터뷰를 담당한 활동가들은 “현행 난민법은 난민인정자에 대해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범위와 주무부처가 어디인지 등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 실질적 지원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1. 언어 장벽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ㄱ씨는 법무부에서 배포한 한글과 영문으로 된 4장짜리 안내문을 받았다. 사실상 처음으로 받게 되는 한국 생활 안내문이다. 안내문에는 거주자격이 부여되고 취업활동이 허용된다는 내용이었다. 또 기초생활보장·건강보험·사회적응교육·직업훈련·학력 및 자격 인정·배우자나 가족의 입국 허가 등에 대한 짧은 안내 문구만 쓰여 있었다.

하지만 축약된 내용만 나와 있어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선 인터넷을 직접 검색해야 했다. 검색으로도 자세한 내용을 알기 힘들었다. ㄱ씨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며 지내야 했고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서’ 난민이나 외국인들에게 제공되는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 직접 관공서에 찾아가 필요한 서비스를 문의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난민도 신청할 수 있는 제도인지를 몰라 규정집을 찾아본 뒤에야 신청을 받아줬다. 말이 통하지 않아 병원이나 관공서 이용은 쉽지 않았다. 운전면허를 따려고 했지만 언어 장벽에 막혔다. 정부가 제공하는 통·번역서비스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한국어를 어느정도 익힌 뒤에야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았다.

2. 증명서 발급

ㄱ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여권을 신분증으로 은행 계좌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여권이 만료됐다. 난민으로 인정받았지만 여권이 유효하지 않다는 이유로 계좌를 사용할 수 없었다. 계좌를 쓸 수 없다보니 친구들에게 부탁해 돈을 보내거나 받아야 했다. 여행증명서가 있지만 3년에 한 번 연장을 할 때면 고유번호가 바뀌어 정상적인 은행 업무도 어려웠다. 여권이 없으니 비행기 티켓을 살 수도 없었다. 대학 수업을 다시 듣고 싶었지만 ㄴ국의 고교 졸업 증명서가 없어 불가능했다. 위협을 피해 한국에 왔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ㄴ국 대사관을 찾는 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보험 가입을 하거나 통신 요금 가족 할인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가족관계증명서도 없었다. 아내와 혼인신고를 하려고 해도 ㄴ국대사관의 ‘미혼증명서’가 필요했다. 결국 혼인신고는 못했다. 딸이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는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관련 법에 따라 국민이 아닌 외국인 아동의 출생 등록과 증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ㄴ국 대사관에 가서 출생 신고를 해야하지만 ㄱ씨는 위협을 피해 ㄴ국을 떠난 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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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난민인권센터, 경기이주공대위 등이 주최한 ‘난민과 함께하는 행동의 날’ 행사에서 난민 상황에 놓인 외국인들과 한국 행동가들이 난민 혐오에 반대하며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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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녀 교육과 국적

딸이 무국적 상태이기에 각종 문제가 생겼다. 출생 신고를 할 수 없었기에 딸의 외국인등록증에는 ‘무국적’이라고 적혀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간 ㄱ씨가 ‘내가 ㄴ국 출신이다’라고 설명한 뒤에야, 딸의 출신지를 ㄴ국으로 바꿔줬다. 하지만 출생 기록이 전혀 없어 이후에 문제가 생길지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ㄱ씨의 딸은 태권도를 5년 넘게 수련했다. 하지만 국기원에서 승단·승급 심사도 받기 어려웠다. 더 늦게 시작한 다른 친구들은 모두 국기원에 가서 승급했다. ㄱ씨의 딸은 국적을 증명할 서류가 없어 신청도 하기 어려웠다. 당시 태권도 관장님이 “그냥 ㄴ국 출신이라고 적고, 무국적인 건 비밀로 하라”고 해서 딸은 겨우 승급 심사를 받았다. 하지만 나중에 관장님이나 아이에게 곤란한 일이 생길까 조마조마하다.

국적이 없다는 건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가족이지만 가족임을 증명할 길이 없다. 가족관계를 증명할 서류가 없어 딸의 스마트폰을 개통해줄 수 없었다. 메신저로 받는 학급통지서도 확인을 못하고 있다. “한국은 내 딸을 내 딸이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믿어주지도 않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몇 차례 난관이 있었다. 한국에선 이주아동은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초·중학교에 전입학이 가능하다. 하지만 의무교육대상은 아니다. 아무도 입학 절차를 안내해주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 정보가 하나도 없었고,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연락해주는 곳도 없었다. 학교를 직접 찾아 교장선생님과 만났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한국어에 익숙한 친구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입학시킬 수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국적이 필요해 한국으로 귀화도 생각했따. 하지만 귀화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난민 신청부터 귀화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린다. 귀화 신청을 하기 전 필요한 영주권(F5 비자) 취득도 어렵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선 월 수입이 대한민국 월 평균 근로소득(303만원)의 약 1.8배에 달하는 560만원이 넘어야 한다. 일자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선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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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주중 학생과 학부모들이 7월 19일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이란 난민으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같은 학교 친구 샤이엔을 도와달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4. 일자리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일해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ㄱ씨는 ㄴ국에서 건축설계사로 일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직업소개소를 통해 알게 된 식품공장에서 주 6일 하루 15시간씩 일했다. 한달에 쥐는 돈은 270만원 정도였다. 직업소개소를 통하지 않고선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 적지 않은 수수료도 내야한다. 구청에서 구직정보를 알려준다고 해 찾아봤지만 대부분 공장 등에서 일하는 일용직 일자리였다. 본국에서의 전문성을 살리거나, 경력을 인정받아 비슷한 일을 구하기란 불가능해보였다.

ㄴ국에서 간호사였던 아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간호사 경력을 증명할 서류를 발급 받기 불가능했다. 사실 경력을 증명할 서류가 있어도 이를 인정 받기란 쉽지 않다. 아내도 상황에 따라 식당 등에서 일할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난민 지위를 인정 받기 전과 노동의 종류가 달라지지 않았다. 난민 신청자 신분이었을 때도 생활을 위해 공사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 수밖에 없었다. 달라진 건 신분, 비자의 종류 뿐이었다. 월세를 감당하기도 힘들어 다른 난민 가족들과 조그만 집을 함께 빌려 방을 나눠쓰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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