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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스무살, 꿈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간 다문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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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받은 사랑 나누려 소방관 시험 치렀죠

예비소방사 장수원씨

어머니가 일본인인 장수원씨(20·대구 달서구 용산동·사진)는 여느 해보다 올해 추석이 기다려진다. 소방공무원으로 취업이 확정된 상태에서 추석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고졸 출신으로 지난 4월 치러진 ‘경북도 소방공무원 공개채용시험’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첫 취업시험에 합격한 그는 오는 10월부터 소방공무원(소방사)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지난 2월 대구 달성고교를 졸업한 장씨는 졸업 2개월여 만에 취업난을 뚫었다. “제복을 입고 재난 현장을 누비는 소방관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는 소방관이 되고 싶어 고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소방서를 찾아가 상담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3학년에 진학한 뒤 그해 5월부터 소방관 시험 공부에 매달렸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 근처 독서실에서 인터넷 강의로 독학하며 11개월 만에 꿈을 성취했다. 1남2녀의 장남인 그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선 취업 후 진학’의 길을 택했다.

장씨의 아버지(47)는 목공, 창호, 타일, 인테리어 등 건축 관련 일을 한다. 1997년 결혼해 낯선 땅에 정착한 어머니(48)는 전업주부로 가족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부모님을 떠올리며 취업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 안정되면 나중에 야간대학에 진학하려고요.”

그에게서 구김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문화 2세여서 지금까지 주눅 들거나 위축된 적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걸 떳떳하게 얘기합니다.” 그는 “다문화 2세를 바라보는 주위 편견을 떨치기 위해 더 강하고 단단해지려 애썼다”고 말했다. 친화력이 뛰어난 그는 운동을 즐기며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어울린다. 고교 시절에는 선도부장을 할 정도로 리더십도 인정받았다. 예비 소방관으로서의 당찬 각오도 피력했다.

“지금까지 받은 사랑을 아낌없이 이웃에 돌려주고 싶습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언제든지 달려가 따뜻한 손을 내미는 친근한 소방관이 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글·사진 taewoo@kyunghyang.com

경향신문

추석 쇤 뒤 입대…한국인이니까 당연

대학생 김근호씨

한국항공대 항공우주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근호씨(23·사진)는 군복무를 위해 학교를 잠시 쉬고 고향 광주에 머물고 있다. 김씨는 추석을 보내고 나면 곧바로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3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 기초훈련을 받고 나면 광주의 한 노인복지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추석 연휴에는 입대 인사도 할 겸 외가도 찾을 계획이다. 김씨 어머니 고향은 조선족이 많이 사는 중국 태링이다. 외가 식구들도 한국 국적을 취득해 서울에 살고 있다. 한국인 아버지는 회사원이다. 김씨는 “한국인인 내가 입대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군복무를 회피하는 일부 사람들을 무작정 비판할 생각도 없다. 군인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한국 사회가 문제 아니냐”고 말했다.

별을 좋아하는 김씨는 대학 졸업 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서 인공위성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게 꿈이다.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별이 좋았다고 했다. 대학에서도 천체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취업 걱정’을 하는 부모님 뜻에 따라 항공대를 선택했다고 한다. 김씨는 “별이 좋았지만 부모님들께서 졸업 이후 진로를 너무 걱정해 지금의 전공을 선택했다”면서 “열심히 공부해 연구원으로 항우연에서 꼭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큰 어려움 없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김씨는 “친구들이나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은 내 어머니 국적에 대해 신경 쓰지 않지만, 가끔 다문화가정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중·고등학교에서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소문이 난 적이 없어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일부 다른 친구의 아픈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면서 “한국 사람들과 아무것도 다를 게 없는데도 부모의 국적을 따지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부의 차별 섞인 시선에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김씨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편견도 줄어들게 된다.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태극마크 달고 3점슛 쏘는 날 오기를

대학생 벌드수흐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꿈입니다.”

한국으로 이주한 지 10년째인 몽골 출신 히시게 벌드수흐(20·사진). 한양대학교 체육학과 1학년인 벌드수흐는 현재 한양대 농구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국가대표라는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그는 귀화시험에 최종 합격해 이달 말쯤 ‘이근휘’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게 돼 어느해보다 기쁜 해를 맞고 있다.

어릴 때 몽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던 벌드수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2009년 어머니가 사는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동반거주(F-3) 비자로 합법적으로 이주했다. 벌드수흐는 몽골에 있을 때부터 농구에 흥미를 느꼈다. 입국해 경남 창원 사화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친구들과 농구를 하며 놀았다. 창원 팔룡중학교 농구부, 마산고등학교 농구부 선수로 활동할 때는 경기마다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맹활약을 펼쳤다. 지난해엔 전국 고교 농구선수 유망주 40명만이 국내 우수 지도자들에게 특별 훈련을 받는 ‘한국농구연맹(KBL) 유스 엘리트 캠프’에도 참가했다.

벌드수흐에게 시련도 있었다. 중·고 농구선수 때 정작 가장 규모가 큰 대회인 전국소년체육대회·전국체육대회에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코트에 설 수 없었다. 이들 대회는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만 뛸 수 있기 때문이다.

체전 출전·수상경력이 없다보니 대학교 체육특기생 진학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부상을 입어도 보험이 안돼 치료비가 더 많이 나오기도 했다. 벌드수흐는 포기하지 않았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한양대 체육학과에 외국인특별전형으로 이달 입학했다. 벌드수흐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본 한양대는 그의 입학을 도왔다. 키 189㎝, 몸무게 87㎏의 신체를 가진 벌드수호는 날렵한 움직임과 장거리 슛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정재훈 한양대 농구부 감독은 “벌드수흐는 슛 거리가 길고 정확하다. 국내 농구계가 관심을 두고 있는 선수이다”라고 말했다. 벌드수흐는 “꼭 꿈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강현석 기자·김정훈 기자 tae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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