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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백영옥의 말과 글] [65] 무심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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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저 사람은 이해가 안 된다’거나 ‘저 나이 때 나는 저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 읽으면 좋을 책이 있다. 가쿠다 미쓰요의 ‘무심하게 산다’이다. 이 책에는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 급한 사람은 갈수록 더 급해지고, 불같은 사람은 갈수록 더 불같아지는 등 대부분 내면의 그릇이 작아지는’ 풍경에 대한 얘기가 가득하다. 나이가 들면 너그러워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것은 그 사실을 인정해서라기보다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즉 무관심해서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때때로 삶은 경험을 통해 현명해지기보다 경험함으로써 '자제하지 않아도 무탈하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고 그녀는 정의한다. 요리를 오래 하다 보면 어떤 과정을 생략해도 음식 맛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에 와닿는 말이었다.

경험은 무조건 많이 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나 역시 있다. 가령 지독한 실연으로 이성(異性)을 믿지 못하는 병이 생겨 연애 불능자가 된 후배나 자동차 사고 후 뚜벅이가 돼 세상 사는 반경이 좁아졌다는 선배나 사회부 기자가 된 후 악랄한 범죄 현장을 목격하면서 세상에 대한 극심한 공포가 생긴 친구가 그렇다. 경험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가능성을 좁히는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고 꼭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많을수록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 간신히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어려서는 운동과 무관하게 살던 내가 운동하게 된 건 건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아프기 위해서였다. 살아보니 돈이란 원하는 물건을 사는 데 쓸 때보다 불행을 예방하는 데 쓰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역시 그렇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쩐지 무심함이란 단어에서 풍기던 부정적인 느낌이 조금씩 희석되는 기분도 든다. 참견, 잔소리 같은 뜨거운 단어를 건너뛰어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느긋하게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이 ‘무심함’이란 단어에서 느껴진달까.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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