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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Why] '88올림픽 다큐'와 예능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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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友야담]

조선일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디자인을 전공하는 후배가 귀띔했습니다. KBS 다큐멘터리 '88/18'이 문제작이라고요. 주지하다시피 올해는 88올림픽 30주년. 지난주 Why?는 호돌이 디자이너 김현을 커버스토리로 다뤘고, 개인적으로는 신문사 앞 역사박물관의 '88올림픽과 서울' 특별전도 흥미로웠습니다.

헬스장 실내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유튜브로 이 다큐를 봤습니다. 왠지 그래야 어울릴 것 같아서요. 문제작, 맞습니다. 공영방송 특유의 엄숙을 의도적으로 우회하기.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이 더 어울려요. 참을 수 없는 다큐의 가벼움. 등장인물은 이주일, 김형곤, 송승환, 정수라, 민해경, 윤시내… 5공 실세였던 허화평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최근 인터뷰를 제외하면, 모두 그 시절 KBS 자료 화면의 절묘한 편집입니다.

거칠게 압축하면 '88/18'은 올림픽 동원 체제의 사회상 스케치입니다. 방점은 '동원'. 동원의 사전적 의미는 평시를 전시 체제로 전환하는 것 아닙니까. '88'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많은 부분을 희생했던 시절. 담당 PD가 착용한 렌즈는 복수입니다. 시대의 억압에 대한 희화화와 냉소가 먼저 보이지만, 번영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경의도 있죠. 심지어 오늘날의 인터넷 역시 당시 올림픽 집계 시스템이 모태였다니까요.

시청자도 자신의 앵글에 따라 이 프로그램을 달리 해석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공영방송 KBS의 '부역 반성문'으로, 또 누군가는 현 정권에 대한 '자발적 아부'로 읽을 겁니다.

하지만 제게는 더 흥미로운 대목이 있더군요. 지상파의 위상 추락과 현대 예술의 확장. 뉴스는 유튜브에 올라오고, 미술 작품은 TV로 보는 세상입니다. 스마트폰과 TV와 미술관의 경계가 흐릿한 세상. '88/18'은 미술관에서 보는 아카이브 전시 같았습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예술가라면, 다른 무엇보다 KBS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질투할 것 같더군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이 프로그램을 해석하는 건 자유입니다. 하지만 '88'을 치른 지도 벌써 30년. 그 사이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이 다큐가 예능일지도 모릅니다. 추석 명절, 호쾌하게 보내시기를.

[어수웅·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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