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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소탐대실] 학교 앞 신호등, 누가 자꾸 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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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등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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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초등학교 앞 삼거리. 내가 출퇴근길에 매일 지나는 곳이다. 그제도 어김없이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앞에 섰다. 녹색불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신호등이 안 보인다. 전날까지 멀쩡히 서 있던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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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자세히 보니 없어진 게 아니다. 옆으로 돌아간 거였다. 90도 방향으로 꺾인 탓에 신호가 보이지 않아서 순간 사라진 줄 알았다. 이 신호등과 짝을 이루는 나머지 신호등은 반대편에 멀쩡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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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봐야 할 한 쌍의 신호등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광경, 그런데 낯설지가 않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 반복되는 신호등의 일탈, 대체 왜?

문제의 신호등은 이미 전력이 있다. 지난 4월에도 지금처럼 돌아갔었다. 덕분에 당시 삼거리 보행신호 체계가 꼬여버렸고, 소탐대실이 이 현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눈앞에 2개의 신호등이 나타났다 ▶ http://bit.ly/2HaHKPv)

취재 후 소탐대실은 담당 기관에 이를 알렸다. 신호등은 그날 바로 수리됐다. 근데 몇 개월 만에 다시 이렇게 된 거다. 무슨 형상기억합금도 아니고 왜 또 저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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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신호등은 철재 보호금구로 지주에 고정돼 있다. 높이도 250cm를 훌쩍 넘는다. 쉽게 돌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근데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반듯하게 90도로 돌아가 있다.

누군가 술 먹고 난동을 피운 걸까? 이 주변은 학교와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이다. 술 취한 사람 자체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그럼 바람 때문인가? 웬만한 강풍이 아니면 불가능해 보인다. 지난 태풍 ‘솔릭’ 때도 서울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반달리즘으로 보기도 애매하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번화가 신호등을 택했을 거다.

두 번이나 똑같은 방향, 똑같은 각도로 틀어진 신호등. 일시적 현상이라고 하기엔 의문점이 많다. 누가 자꾸 돌려놓는 것일까. 소탐해보자.

■ 돌아간 신호등,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

사실 신호등이 돌아간 것 자체는 큰 하자가 아니다. 방향만 교정하면 되기 때문에 수리 방법도 간단하다. 하지만 돌아간 상태로 계속 방치된다면 안전 문제로 귀결된다.

일단 보행자가 신호등을 보지 못한다. 녹색불인지 빨간불인지 분간할 수 없다. 애초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라고 여겨 그냥 길을 건널 수도 있다. 현장에서도 그런 보행자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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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도 이 신호등을 보지 못한다. 우회전하는 차량은 보행자신호가 녹색불이면 일시정지한다. 하지만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 이 횡단보도에서는 일시정지 차량을 찾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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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전하던 택시가 녹색불에 건너던 보행자에게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물론 신호 여부를 떠나 차량은 무조건 보행자를 살펴야 한다. 그래도 신호등이 제대로 보였다면 저런 태도가 쉽게 나오진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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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끝이 아니다. 또 있다. 옆에 있던 다른 횡단보도까지 봉변을 당했다. 신호등이 90도로 틀어지면서 졸지에 신호등이 2개가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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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빨간불, 다른 하나는 녹색불이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보행자는 이걸 보면 당황스럽다. 갑작스러운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는 거다. 인근 공사장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인부도 고충을 토로했다. 본인도 신호가 헷갈려 힘들다고 한다. 공사장 앞이라 트럭도 자주 다니고, 속도를 내는 차도 많은데 위험해 보인다.

■ 우리 동네 신호등만 그러나?

그럼 이 신호등만 문제일까. 그건 아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가보면 신호등 각도가 틀어졌다는 민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날짜를 보니 꾸준히 민원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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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은 어떨까? 대전시는 교통건설국 SNS에 도로시설물 정비 현황을 자세히 공개하고 있었다. 마침 각도가 틀어진 신호등을 바로잡았다는 게시물도 여러 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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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눈에 띄는 게 있다. 딱 봐도 완전히 틀어진 신호등을 정비했다는 글이다. 수리 전 상태를 보면, 우리가 발견한 신호등과 틀어진 정도도 비슷하다.

■ 신호등이 차에 치이고 있었다

곳곳의 신호등이 자꾸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전시에 물어봤다. 근데 생각지 못한 답변을 돌아온다.

대형차량이 원인이란다. 트럭이나 탑차가 신호등을 치고 가서 틀어지는 거라고 담당자는 설명했다. 주취자 난동이나 태풍 때문이 아니었다.

근데 제아무리 큰 차라 한들, 인도 안에 있는 신호등까지 건드릴 수 있을까?

보편적인 경우는 이렇다. 가로변 차선을 달리던 대형차가 우회전을 할 때, 차량 후미에 신호등이 부딪히게 된다. 그 충격으로 신호등 방향이 틀어지거나, 심하면 깨질 수도 있다. 그래서 공사장 인근이나 시 외곽 등 대형차량 통행이 많은 곳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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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울에 있는 문제의 신호등을 살펴보자. 주변 위치를 보면 대전시에서 설명해준 내용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인근에 공사장이 있다. 아파트에 배달차량도 자주 온다. 게다가 신호등도 우회전 차선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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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신호등도 차에 부딪혀 이렇게 된 것일까? 담당 도로사업소에 문의했다. 이곳 역시 대형차에 부딪혀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지난 4월도, 이번도 모두 같은 원인이다.

■ 영원히 고통받는 신호등

신호등을 다시 보니 정말 부딪힌 흔적들이 눈에 보인다. 녹색불 차양판이 깨져있다. 지난 4월에도 이미 깨져있었지만 이번엔 더 심하다. 또다시 부딪혀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사고를 당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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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형차 운전자들의 잘못일까? 당연히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곳처럼 같은 신호등이 여러 번 돌아가는 경우라면, 운전자 부주의 외에 다른 요인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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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보니 신호등 지주가 코너 구석에 박혀있다. 단차도 없는데 차도와 거리가 가깝다. 여기에 전륜구동 트럭이 지나간다면, 뒷바퀴가 인도에 진입하면서 차체가 신호등에 닿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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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기 전 신호등의 모습을 스트리트뷰에서 찾아봤다. 정상 방향일 때 신호등이 차도에 가까이 접해있다.

그래서일까. 과거 스트리트뷰를 더 찾아보면, 중간중간 파손되거나 비틀어진 모습이 보인다. 꾸준히 차량에 부딪혀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너덜너덜한 신호등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짠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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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고통의 굴레를 끊자

소탐대실이 민원을 전하자 담당 도로사업소는 곧바로 문제의 신호등을 수리했다. 원래 방향으로 돌아온 거다. 정비 작업은 신속하고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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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또 언제 신호등이 차에 치여 틀어질지 모른다. 근본적 해결이 필요하다. 바로 위치 조정이다. 신호등 지주가 차도와 가깝다. 조금만 안쪽으로 옮겨주자.

지주 이전이 비용과 시간상 부담이라면 신호등 높이라도 올려보는 건 어떨까. 신호등의 현재 높이(노면~신호등 하단)는 270cm 정도다. 「교통신호기 설치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보행신호등 높이는 350cm까지 가능하다. 보행자 시야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더 높이 달아도 괜찮을 것 같다.

이것마저 어렵다면 신호등이라도 뒤로 살짝 빼자. 차도로부터 조금이나마 멀어지게 하는 거다. 다른 교차로의 신호등과 비교하니, 신호등을 지주에 고정하는 보호금구로 각도조절이 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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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치이지만 않아도 신호등이 틀어지는 일은 거의 사라질 거다. 결국 사람 안전하자고 설치한 시설이 아닌가. 무사히 서 있게 해주라. 신호등이 안쓰럽기는 처음이다.

소탐대실 끝.

#저희는_작은_일에도_최선을_다하겠습니다

기획·제작 : 김진일, 김영주, 박진원, 송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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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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