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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前판사 영장 기각한 판사, 검찰 보란듯 3600자 사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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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청구한 유해용 구속영장 기각

이례적으로 범죄 안 되는 이유 설명

서울중앙지검, 영장 기각 때마다 법원 비판 메시지 보내

일선 판사 "검찰이 여론몰이로 법원 흔들지 말라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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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0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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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유해용(52ㆍ사법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결정은 다소 이른 시간인 밤 10시께 취재진에게 공지됐다. 중대 사건의 경우, 영장판사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 결정이 대개 자정을 넘어 이뤄지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김경수(51) 경남지사만 하더라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심사) 다음날인 지난달 18일 새벽 1시 30분쯤 기각 결정이 내려져 서울구치소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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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전담 업무를 맡고 있는 허경호 부장판사. [중앙포토]


영장 심사를 맡은 허경호(44ㆍ연수원 27기) 부장판사는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3600자 가량의 사유서를 함께 내놨다. 공무상 비밀누설, 직권남용,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절도죄, 개인정보보호법 등 검찰이 열거한 6가지 피의사실에 대해 허 부장판사는 일일이 구체적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장문의 사유서 결론 부분에는 “피의사실 가운데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법원, 검찰 보란 듯이 3600자 메시지로 응수
기각 결정 이후 법조계 안팎에선 허 부장판사가 총대를 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통상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법리 다툼의 여지가 있다” 같은 식으로 4~5줄 간략하게 변호인에게 통보된다. 기소 전 단계에서 혐의 성립 여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경우 재판 시작 전에 결론이 난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해용 전 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전까지 검찰은 한 달 가까이 한동훈(45ㆍ연수원 27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 명의로 멀티미디어메시징서비스(MMS) 형태의 입장문을 하루에도 두 차례 이상 보내왔다. 올 초까지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 근무했던 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지난 12일 기각됐을 때에도 검찰은 “영장판사가 주관적 추측으로 죄가 안 된다고 단정한 것은 대단히 부당하다”고 즉시 취재진에게 문자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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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30명 가량으로 구성된 '재판 거래 의혹' 수사팀을 지휘하는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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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도권 법원에 근무하는 판사는 “‘주관적’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법원의 공정성에 상처를 내려는 시도로 보는 동료들이 많았다”며 “더는 여론 몰이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본다”고 말했다.

유해용 영장 이전에 검찰, 하루에 3차례 이상 MMS 돌리기도
검찰의 잇단 공세에 맞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 4명은 지난 20일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에게 영장전담부서를 한 개 더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은 기존 형사단독재판부 한 곳을 없애고 명재권(51ㆍ27기) 부장판사를 영장전담재판부에 배치한 지 약 3주 만이다. 명 부장판사는 1997년 검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뗐다가 12년 뒤 판사로 전직했다. 이전까진 박범석(45ㆍ사법연수원 26기), 이언학(51ㆍ27기), 허경호 부장판사 등 3명이 영장전담 업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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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특히 서울중앙지법 영장부 판사들은 “동일 또는 유사한 사안에 대한 재청구 또는 재재청구에 따른 재배당이 필요한 경우, 이를 담당할 영장전담법관을 충원할 필요가 있다”고 민중기 법원장에게 요청했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이달 초 검찰과 법원 간 벌어졌던 충돌이 재차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법원은 최근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태에서 서로 '핑퐁 게임'을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법원이 재판거래 관련 영장을 기각하면 검찰 역시 사실상 같은 영장을 그대로 법원에 재차 청구했기 때문이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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