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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노동자였던, 안희정 성폭력 피해 생존자 김지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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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

최근 민주노총 발행 ‘노동과세계’에 기고

“노동자로서 성실히 일했던 내 인생은

재판 중 모두 가해자 논리 뒷받침 근거로 쓰여

피해자다운 것이 업무 외면·현실 부정하는 것이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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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였던 김지은입니다. 현재는 안희정 성폭력 피해 생존자입니다. 불편하실지 모르지만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권력을 이용해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 한 달여 만에 피해자 김지은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8월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는 “위력은 존재했지만 이를 행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김씨는 최근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통해 민주노총에서 발행하는 ‘노동과세계’에 글을 보냈다. ‘노동과세계’ 쪽에서 먼저 공대위 쪽에 요청을 했고, 김씨가 공대위를 통해 기고 요청에 응해서 글을 게재하게 됐다. 이 글은 민주노총과 연대단체들이 공동발간하는 추석 선전물에 실렸고 20일 오후 온라인으로도 공개됐다. (▶김지은씨 기고글 전문)

공대위 관계자는 21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김씨가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일하면서 겪었던 일과 특히 (자신과 같은)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폭로 뒤)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이 문제를 다 같이 생각해달라는 취지로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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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김지은이고 싶습니다’는 제목의 글에서 김씨는 자신을 ‘금융 채무자이자, 병환의 가족을 부양하는 실질적 가장이었으며, 성과로 평가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고 소개했다. 정부부처의 10개월 단기간 행정 인턴으로 시작한 김씨는 학위를 따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언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기간제 노동자, 연구직을 거쳐 계약직 공무원이 되었고 공공기관에서 6년 정도 일했다.

김씨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안희정 선거 캠프에 들어갔지만 “캠프 안의 분위기는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고 말했다. “모두가 후보 앞에서는 경직됐고, 후보의 말에 대들지 말고 심기를 잘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를 선배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후) 별정직 공무원으로 도청에 들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안희정 지사의 이중성이었다”며 민주주의자이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도자라는 이미지와 실제는 달랐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휴일은 거의 대부분 보장받지 못했고, 메시지에 답이 잠깐이라도 늦으면 호된 꾸중을 들어야 했다. 24시간 자신의 전화 착신, 아들과의 요트 강습 예약, 개인 기호품 구매, 안희정 부부가 음주했을 때 개인 차량 대리운전 등 일반 노동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주어졌다”고 말했다. 가끔 선배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비서는 업무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지사가 지시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내가 최초의 여성 수행 비서였기 때문에 이전 선배들이 겪었던 노동권 침해뿐 아니라 성적 폭력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러 차례 성폭력 피해가 이어지는 와중에 더 주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눈밖에 벗어나지 않도록 더 일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고 돌이켰다.

김씨는 하지만 “재판 중에 노동자로서 성실히 일했던 내 인생은 모두가 가해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좋은 근거로 사용됐다”며 “피해자다운 것이 업무를 외면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사는 것인가? 하루하루의 업무가 절실했던 내가 당장 관두고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위력이 존재하지만 행사는 하지 않았다’는 1심 재판부의 판단에도 반박했다. 김씨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며 “침묵과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하는 것, 직장에서 술을 강요당하고, 달갑지 않은 농담을 듣는 것, 회식 자리에서의 추행도 노동자들이 겪는 위력의 문제이며, 심하게는 갑질로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고소 이후 반년 넘게 재판에만 임하면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수입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김씨는 “다시 노동자가 되고 싶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는 상사와 함께하고 싶고,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동료들과 일하고 싶다”며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를 그렸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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