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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일반인 승소해도…‘반복되는 행정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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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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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에 의무이행 강제력 없어

또다른 이유 들어 소송 제기

LPG충전소 사업을 하려던 마모 씨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자 소송을 내 2년 전 승소했다. 하지만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는 ‘개발제한지역으로 지정됐다’는 이유를 들어 또 마 씨의 충전소 설치를 허가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충전소 설치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게 부당하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는데도 사실상 판결에 불복한 셈이다. 마 씨는 올해 초 다시 소송을 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승소하더라도 또 다른 사유를 들어 불허가 처분이 내려진다면, 이론상 소송을 끝없이 반복하게 될 수도 있다. 마 씨가 충전소 설치를 내달라며 지자체와 분쟁을 벌인 소송은 총 6건, 시간도 6년을 허비했다.

이처럼 행정청이 사실상 재판 결과에 불복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가에 ‘인ㆍ허가 문제를 처리해달라’, ‘정보를 공개해달라’는 식의 민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하지만 현행 행정소송법에 따르면 법원은 국가가 내린 부당한 처분에 대해 ‘취소하라’고 판결할 수는 있지만, ‘의무를 이행하라’고 할 수는 없다. 마 씨의 경우 ‘허가를 내주지 않은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만 받아볼 수 있을 뿐, ‘허가를 내주라’는 판결은 할 수 없다. 허가 등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문제는 행정부의 영역이고, 법원은 절차가 정당한지만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법무법인 바른 하종대 변호사는 “행정기관이 법원이 판단하지 않은 새로운 사유를 들어 또 다시 거부하면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결과가 빚어진다”며 “반복되는 행정소송을 겪어야 하는 입장에선 피해가 크다”고 설명했다.

산업 재해ㆍ공무상 재해 급여, 국가유공자 지정 소송도 마찬가지다. 도시가스 공사현장에서 일한 이모 씨는 작업 중 발생한 사고로 손목 등에 골절상을 입었다. 그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근무 중 입은 사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이 씨는 2010년 소송을 냈고 1ㆍ2심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하지만 공단은 이 씨가 근로자가 아닌 하도급 사업주라는 근거로 또다시 산재 신청을 거절했다. 이번에는 법원도 공단 측 주장을 인정했다. 결국 이 씨는 4차례 소송을 거치는 동안 3년의 시간을 소비했다.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국가가 다시 거부할 수 있는 행정소송 특성상 결론을 얻기까지 긴 시간과 막대한 소송 비용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 어려움을 느낀 민원인은 소송을 취소하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기도 한다. 행정소송이 ‘반쪽짜리’ 권리 구제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원인이다.

정경수 기자/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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