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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외동딸인데 시댁만 챙기라고요?”2030 저출산 세대의 명절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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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저출산 1세대인 1983~1992년생

평등하게 자랐지만 명절 문화 여전히 남성 중심

중앙일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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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결혼한 회사원 이모(29ㆍ여)씨는 결혼 뒤 첫 명절인 지난 설 연휴 남편과 크게 다퉜다. 남편과 설 전날 시댁에 가서 자고 아침 일찍 친정으로 이동하기로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제사만 마친 뒤 출발하려했지만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누나 내외오면 보고 가라”며 만류했다. 남편도 못 이긴척 동조했다. 결국 이씨는 저녁즈음에야 친정에 도착했다. 이씨는 “시누이는 자기 시댁에서 아침만 먹고 달려오는데 나는 저녁에나 집에 갈 수 있었다. 외동딸인 내가 오기만을 하루종일 기다린 부모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명절엔 추석 전날 친정에 먼저 갔다가 당일 낮에 시댁에 가기로 남편과 합의했다”라며 “부모님은 팽개치고 시댁만 챙길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20~30대 젊은 부부들의 명절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1983년생~1992년생에 해당하는 이들은 한국의 ‘저출산 1세대’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저출산이 사회문제로 대두됐지만, 실제 한국이 저출산 추세에 접어든건 1983년이다.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인구대체율(인구를 유지하는 수준ㆍ2.1명) 이하인 2.06명으로 떨어졌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출산율은 급전직하해 1.5~1.7명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출산율이 3~4명대로 형제ㆍ자매가 여럿 있는 바로 윗 세대와 달리 집집마다 자녀가 많아야 셋, 대부분 1~2명이다. 외동아들ㆍ딸이 많다. 남편 집 중심으로 보내던 과거 명절 관행에 대한 불만도 커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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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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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생기기 전 부부들이 균형점을 찾기도 한다. 회사원 장모(35ㆍ여)씨 부부는 명절을 아예 통으로 시댁에서 보낸다. 장씨는 친정 근처에 살며 6세, 4세인 두 딸을 친정어머니께 맡긴다. 시댁은 4시간 거리에 있다. 장씨는 “친정어머니께는 명절 때 휴가를 드린다. 시댁은 멀어서 자주 가지 못하니 명절 때라도 최대한 오래 머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내게 고마워하는데, 남편도 친정부모님께 아들처럼 잘해서 내가 더 고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최모(35ㆍ여)씨는 설엔 시댁에 먼저, 추석엔 친정에 먼저 간다. 결혼 2년차인 최씨에겐 미혼인 여동생(29)이 있다. 최씨는 “우리 부부에게 양가 부모님 모두 소중한 만큼 양쪽 모두 마음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결혼 초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아예 귀성 대신 가족여행이나 식사로 대체하기도 한다. 회사원 박모(33)씨는 이번 추석에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베트남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지난 설엔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박씨는 “부모님이 처음엔 어색해할까봐 걱정했는데 막상 여행 가보니 좋아하셨다. 아이 재롱 덕분에 어색할 틈이 없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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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차례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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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명절 갈등이 이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예전 부모들이 “부부싸움은 물 베기”라며 말렸다면, 요즘엔 부모가 먼저 “귀한 내 자식이 참고 사는 꼴 못 본다”며 이혼을 권하기도 한다.

심미숙 변호사(법률사무소 세원)는 “명절 직후엔 항상 이혼 사건이 늘어나는데 쌓였던 갈등이 명절을 계기로 폭발하면서 이혼으로 이어진다. 부모들도 말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심 변호사는 “현재 20~30대 젊은 여성들은 대부분 한 자녀 또는 두 자녀 가정에서 자라면서 평등하게 대접받고, 교육받았다. 그런데 우리 명절 문화는 여전히 남성 가족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보니 갈등이 쉽게 일어나게 된다”라고 풀이했다.

실제 대법원 ‘월별 이혼 접수 건수’(2012년 1월~2017년 8월) 통계를 보면 설ㆍ추석이 있는 달과 그 다음 달의 이혼 접수가 평균 15% 늘었다. 지난해 설 연휴가 있었던 1월 총 1만1521건의 이혼신청이 접수됐고, 2월에는 1만3256건이 접수돼 15% 늘어났다. 많게는 34.56%(2015년 2~3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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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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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더이상 명절에 벌어지는 갈등을 개인이나 가족간의 갈등으로 치부해선 안된다. 넓게 보면 사회적인 협약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명절에 남편 집에 먼저 갔다면, 다음 명절에는 아내 집에 먼저 가자'는 식의 평등한 협약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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