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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남북 군사합의 곳곳에 숨겨진 위험, 신뢰 구축부터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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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해제 수준의 고육지책

완충수역, 형평성 논란

무인기 비행금지, 정보망 깜깜이

북 장사정포 대비책 무력화

군사합의, 한·미 조율 필수

국회 보고 및 검증과정 거쳐야

남북군사합의 문제점 분석

평양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남북 군사합의는 긴장 완화를 위한 행보지만 위험성도 안고 있다. 청와대는 군사합의서를 ‘실질적 종전선언’이라고 평가했다. 군사 충돌을 방지하는 노력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군비통제는 신뢰구축이 필수다. 과거 신뢰구축 없이 평화협정이나 강화조약을 체결했다가 대부분 낭패를 봤다. 베트남의 파리평화협정(1973년)이나 영국 체임벌린 수상과 독일 히틀러의 뮌헨협정(1938)이 그러했다. 월남은 패망했고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앞으로 철저한 검증과 대비가 요구된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남북 군사합의는 ▶지상·해상·공중 적대행위 중지 ▶비무장지대 GP(감시초소) 철수 ▶JSA(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공동유해발굴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 모두 7개 분야다. 합의서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한 인민무력상 노광철 대장이 서명했다. 남북은 이 합의를 위해 7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장성급 군사회담과 대령급 군사실무회담, 통신실무접촉 등을 가졌다. 협의는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래서인지 국회 보고나 대국민 설명은 없었다.

군사합의 가운데 지상 적대행위 중지는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남북이 각각 5㎞씩 완충지대를 설정한 것이다. 이 구역에서 포병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중지키로 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야외기동훈련은 5㎞ 밖에서 주로 이뤄져 군사대비태세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해상 적대행위 중지는 우려 소지가 있다. 합의에 따르면 서해는 인천 앞에 있는 덕적도에서 북한 대동강 입구 초도까지, 동해는 속초에서 북한 통천까지를 완충수역으로 정하고, 이 수역에서 포병·함포 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을 중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해는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남북 직선으로 덕적도까지는 85㎞이지만 북한 초도까진 50㎞다. 동해는 MDL 기준으로 속초까진 47㎞, 북한 통천까지는 33㎞다. 우리가 훨씬 넓은 바다를 완충수역에 내줘 형평성에 어긋난다.

또한 북한은 초도 부근에서 해상훈련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5도를 지키기 위해 수시로 훈련을 해야 한다. 서해 5도는 북한 해안포와 해군기지가 있는 장산곶과 등산곶의 코앞이지만 우리 함정은 멀리 평택에서부터 와야 한다. 연평도 포격도발 때는 해안포가 아니라 그 뒤의 야포로 쐈다. 이에 비해 백령도·연평도의 유일한 방어수단인 K-9 자주포 등의 사격훈련을 하지 않으면 우리 대비태세는 크게 약화한다. 서해에선 언제나 북한이 도발했고 우리는 방어 입장이었다. 북한만 도발하지 않으면 긴장이 조성될 까닭이 없다. 북한은 이번 합의로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인정한 NLL 무효화를 시도할 수 있다고 김진형 전 해군 소장이 지적했다.

중앙일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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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심각한 항목은 공중 적대행위 중지다. 합의에서 남북은 동부지역은 MDL 기준으로 15㎞, 서부지역은 10㎞ 안쪽 공역에 무인기를 띄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전방에서 우리 군은 무인기로 북한군의 동태를 살핀다. 우리 사단·군단 무인정찰기는 북한군 전방 장사정포 배치를 비롯한 군사활동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관찰한다. 북한군 도발을 감시하고 실제 도발하면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역에서 무인정찰기 비행을 금지하면 우리 군은 눈뜬장님이 된다. 자칫 수천억 원을 들여 구입한 무인정찰기는 창고에 들어가야 할지 모른다. 여기에다 앞으로 육군은 중대·대대·연대급까지 소형 무인정찰기를 갖출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찰·감시능력 강화를 강조한 국방개혁도 다시 짜야 할 판국이다. 특히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 장사정포에 관한 정보는 완전히 깜깜이 신세가 된다. 미국에 정보 의존이 더 커진다. 군이 그동안 북한 장사정포에 대응하기 위해 수조 원을 들여 구축한 다연장포와 전술지대지 미사일 등 대화력전체계도 무용지물이 된다.

공중 적대행위 중지는 동부는 MDL 40㎞ 이내, 서부는 20㎞ 안쪽 공역에서 고정익 항공기의 비행도 금지한다. 금지공역 내에선 전투기의 공대지유도무기 사격 등 실탄사격 훈련이 금지된다. 이 기준에 당장 적용될 항공기는 북한군을 영상 촬영하는 공군 금강 정찰기와 전투기다. 공군 전투기의 합동직격탄(JDAM) 등 유도탄은 북한 장사정포 동굴진지 등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어 북한군에겐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다. 이 조치에 따라 경기도 명성산 산정호수 인근 승진훈련장에서의 전투기 실사격훈련은 중단 또는 많이 축소될 전망이다. 전투기는 선회반경 때문에 금지공역을 지나칠 수밖에 없어서다. 뿐만 아니라 동부지역에서 우리보다 열세인 북한 공군은 여유를 갖게 됐다. 공군은 강릉과 원주에 KF-16 전투기 등을 배치해 동부지역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고 있다.

비무장지대 안에 설치된 GP 철수도 우리측이 불리하다. DMZ 내에 남측은 GP 60여 개를, 북측은 160여 개를 견고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배치해두고 있다. GP에는 대략 1개 소대가 근무한다. 남북은 올해 말까지 GP를 각각 11개씩 동수로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원칙적으로는 남북이 비례적으로 철수해야 한다. 남측이 11개와 북측 33개를 철수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동수로 계속 철수하면 우리가 60여개를 모두 제거해도 북한은 100개가 여전히 DMZ에 남는다. 더구나 북한은 GP를 지원하는 민경대대도 DMZ 안에 있지만, 우리측 대대는 DMZ 밖에 있다. DMZ 안에서 북한군 침투를 감시할 GP가 부족하면 20만 명이나 되는 북한군 경보병여단 등 특수부대에 대처하기 어렵다. 유사시 우리 장병들의 희생이 커질 수 있다.

한강하구 공동이용에 합의했다. 한강하구 약 70㎞ 구간에서 남북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 수역에서 골재(모래) 채취, 관광·휴양, 생태 보전 등을 추진한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군이 민간으로 위장한 침투를 막을 방도가 없고, 북한 해산물 등을 해상에서 불법환적해도 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수역은 유엔사 관할구역인데도 유엔사와 별로 협의가 없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 또 남북은 해주 직항로와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허용하는 방안을 조만간 논의할 예정이다. 북한 선박의 제주해협 무해통항은 북한이 천안함 폭침 등 도발에 따라 금지한 사안이다. 제주해협 통항을 허용하려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 정도는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가 군사동맹인 한·미 군 당국 간 긴밀한 협의 없이 이뤄진 점도 문제다. 미 국방부는 20일 “합의서 내용은 동맹인 한국과 철저하게 검토하고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군사합의는 팔을 내주고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숨겨진 위험성이 많은 만큼 지금부터라도 한·미 조율과 국회 보고 및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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