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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11살 아이 아빠의 죽음, 그 뒤에는 카스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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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붙잡고 울던 11세 인도 소년의 이야기가 세계인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가족의 비극만이 아니었다. 인도 사회에 밑바탕에 깔린 비극의 한 모습이라는 사실이 새삼 확인됐다.

19일(현지시간)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인도 정부와 민간 관계자들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인도에서 하수도와 정화조 청소과정에서 5일에 1명꼴로 목숨을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이번 달에만 11명의 하수도 청소부가 사고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수도 청소부들이 이처럼 빈번하게 목숨을 잃는 것은 일차적으로 안전 장구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위험한 현장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인도 하수도 청소부들의 빈번한 죽음은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아시아경제

시브 서니(Shiv Sunny) 기자 트위터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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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힌두스탄 타임스의 기자 시브 수니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 장의 사진과 그 사진 속 사연을 소개했다.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죽은 이는 27세의 아닐이었다. 그는 하수도를 점검하기 위해 내려가던 중 로프가 끊어져 하수도에 빠졌고, 목숨을 잃었다. 그에게는 3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중 11살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수니는 "기자로서 많은 비극을 목격했지만 이처럼 슬픈 장면은 보지 못했다"며 사연을 세상에 소개했다. 인도 사회는 한 가정의 슬픈 사연에 먹먹해 했고, 이 가정을 돕기 위해 모금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사연이 알려진 뒤 인도 정부와 시민사회는 이 문제를 제대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하수도 또는 정화조를 청소하다 죽은 인도인인 123명이었다. 물론 이는 정부 조사로,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됐다. 시민단체에서는 올해에만 목숨을 잃은 하수도 청소부원이 300명은 넘을 것으로 봤다. 하수도, 정화조 청소부들은 사고로 죽거나, 졸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인도 수도 델리에서는 5명이 목숨을 잃는 일들도 있었다. 아닐의 사례처럼 이들 역시 별도의 장비 없이 맨손으로 하수도와 정화조를 청소했다.

이 사안은 단순히 보면 안전 문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질적인 인도의 카스트 계급 문제가 깔려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인도 사회가 빠르게 현대화되고 있지만, 열악한 근무환경의 하수도 청소부와 같은 직업이 남아 있는 것은 카스트 제도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카스트 제도에서 하층민이 도시에 오게 될 경우, 일자리는 하수도 청소와 같은 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하수도에 몸을 반쯤 잠근 채 청소하는 이들을 마주할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인도의 열악한 근로환경도 하수도 청소부들을 죽임으로 내몰고 있다. 하수도 청소부의 경우 하청, 재하청을 통해 고용되다 보니 고용주의 책임을 묻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안전 대책 등이 만들어져도 현실에서 이행되지 않는 것은 이런 고용 관행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도 사회에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적 의지가 없이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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