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IF] 獨 화학회사가 해양생물 특허 절반… 개도국 "독점 막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바다의 절반이 한 기업의 소유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특허로 따지면 사실이다. 세계 최대 화학회사인 독일 BASF가 공해(公海)에 사는 해양생물로부터 나온 유전자 특허의 절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BASF는 향유고래에서 녹조류, 플랑크톤,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양생물의 유전자를 특허로 소유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당장 해양생물 특허권의 독점을 규제하자고 나섰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공해에서 자유롭게 어업 활동을 하듯 유전자 특허권도 허용해야 한다고 맞섰다. 195국 대표들이 유엔에 모여 지난 17일까지 열흘 넘게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과연 바다의 특허권은 어디로 흘러갈까.

10국이 해양생물 특허 98% 소유

스웨덴 스톡홀름대 로버트 블라시악 박사 연구진은 지난 6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공해에 사는 해양생물에 대한 유전자 특허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88년 유럽뱀장어 유전자의 일부가 특허로 인정받은 이후 지난해까지 862종의 해양생물로부터 1만2998건의 유전자 특허가 등록됐다. 이 중 47%를 BASF가 보유하고 있다.

국가로 치면 독일과 미국, 일본이 해양생물 특허권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과 노르웨이·영국·프랑스·덴마크·캐나다·이스라엘·네덜란드까지 선진국 10국이 해양생물 특허권의 98%를 소유하고 있다.

조선비즈

그래픽=양인성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해양생물의 유전자 특허에 열을 올리는 것은 바다가 신기술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이미 멍게에서 추출한 물질로 항암제를 개발했으며, 갯민숭달팽이 추출 물질은 혈액암 치료에 쓰이고 있다. 남극에 사는 갑각류인 크릴에서는 차가운 물에서도 몸이 얼지 않게 하는 생체 부동액을 찾았다. 이 물질로 혈액이나 정자·난자를 얼리지 않고 장기 보관하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향유고래 분비물은 고급 화장품과 향수에 들어간다. 기업들은 해양생물에서 치료 물질이나 화장품 성분을 만드는 유전자를 찾아 미생물에 집어넣으면 유용물질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최근에는 심해저에 사는 극한 미생물들이 각광받고 있다. 산소도 없는 고온·고압 환경을 견디게 하는 유전자를 찾아내면 사막에서도 살 수 있는 농작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농산품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 BASF는 미국 농업회사 카길과 함께 녹조류에서 지방산을 만드는 유전자를 유채씨에 집어넣는 연구를 하고 있다. 성공하면 바다 생선에서만 얻던 오메가3 지방산을 지상에서 대량생산할 수 있다.

개도국과 선진국 입장차 극명


조선비즈



개도국들은 선진국 기업들이 인류 공동의 자산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2010년 채택된 나고야의정서처럼 유전자원을 활용해 얻는 이익은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고야의정서는 특정 국가의 생물자원을 상품화하면 해당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익도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개도국들은 해양생물 유전자로 얻은 수익을 세계 공동 기금에 넣어 해양생물 보호 활동에 쓰는 방안을 제안했다.

선진국들은 정반대의 입장이다. 나고야의정서는 한 국가의 생물자원을 마음대로 가져가지 못하게 한 것이므로 공해상 생물로 확대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연안에서 200해리(370㎞) 떨어진 공해는 특정 국가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다. 선진국들은 공해상에서는 누구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듯 유전자원 역시 자유롭게 탐색하고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계 역시 해양판 나고야의정서가 나오면 연구에 제약이 가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나고야의정서 발효 후 외국산 생물을 연구할 때 엄청난 문서 작업에 시달리고 있다. 개도국들이 논문에 공개된 해양생물의 유전자 염기서열까지 규제 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해양생물 연구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원양어업에 타격 줄 수도

우리나라는 선진국들과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양희철 박사는 "개도국은 해양생물 유전자원뿐 아니라 공해의 어업까지 환경영향평가를 먼저 거치도록 하는 방식으로 규제하자는 입장"이라며 "개도국 안대로 가면 대표적인 우리나라가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중국과 스페인·대만·일본·한국이 공해상 어업 생산의 85%를 차지한다. 해양생물 유전자 특허 문제가 우리나라의 원양어업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양 박사는 "1982년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은 심해저는 공동 유산으로 공동 관리하지만 그 위의 물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며 "결국 선진국과 개도국이 일정 선에서 절충하는 선에서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럽연합도 공해상 해양생물의 유전자 특허를 인정하되 염기서열을 공개하도록 하거나, 유전자를 비공개로 하면 개도국의 해양 연구를 돕는 국제기금에 돈을 내는 절충안을 제안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