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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퓨마의 탈출과 사살, 그리고 사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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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노정래의 동물원탐험

당황했을 퓨마, 포획 과정서 염두했으면 생포 가능했을 수도

동물 전문가 사육사, 현장 투입에만 급급…보수교육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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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교통사고, 공사장이나 자연재해 등 사고가 예기치 않게 난다. 동물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가뭄이나 폭우로 먹잇감이 씨가 마르면 먹이를 찾아 멀리 떠날 수밖에 없다. 막강한 경쟁자가 자기 영역에 쳐들어와 안방을 내주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이 서식지를 파괴해 터전을 망쳐 놓는 날벼락 같은 일도 닥친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은 제 때 밥을 주고, 살기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니 사고가 날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동물원에서도 심심치 않게 사고가 난다. 왜 그럴까?

동물원에서 동물을 기르려면 동물영양사, 동물큐레이터, 수의사, 방역, 사육사 등 동물 사육과 관련된 직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 동물과 얼굴 맞대며 일하는 사람은 사육사다. 사육사가 돌보고 관찰해서 아픈 곳이 없는지 꼼꼼히 살핀다.

아침에 출근해서 근무복으로 갈아입기 전에 간밤에 별일 없었는지도 살필 정도로 애정도 있어야 한다. 동물이 놀랠까 봐 노크를 하거나 헛기침을 하는 세심함도 있다. 밤새 목이 마를지 모르니 물통에 물이 채워져 있는지, 늘 신선한 물을 마셔야 하는 경우 수도꼭지에 물이 쫄쫄 잘 나오고 있는지 퇴근 전에 살핀다.

밥 주고 똥 치우는 사육사?

우리나라에서 사육사 입사 경쟁률은 치열하다. 사육사 모집 공고에 경쟁률이 30:1로 인기가 매우 높은 곳도 있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하면 뿌듯할 것이며, 동물을 좋아해서 선택한 직업이라 만족도 또한 높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자기 직업이 사육사라는 것을 알리기 꺼리는 사람도 간혹 있다. 일반인의 머릿속에 사육사란 직업은 그저 동물 똥 치우고, 청소하고 먹이 주는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걸 아는 사육사는 자기가 사육사로 불리는 게 싫어서 그럴 것이다.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사육사는 동물관리 전문지식이 많이 필요한 직업군이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육사도 많다. 외국에서는 유명한 대학 출신 사육사도 있다. 동물관리 시 스트레스를 주지 않아야 하니 긍정적 강화 훈련도 해야 하고,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니 동물에 대한 지식이 박사급이다. 늘 먹이 주고 똥 치우고 청소하는 일보다 다른 일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사육사는 자부심 가져도 될 직업이다.

동물을 다루는 기술도 필요하다. 사육사 역할을 다 해내면 뿌듯하고 보람 있을 것이다. 게다가 꼼꼼하게 일을 해낼 테니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 또한 낮을 것이다. 혹시 아직도 자기 직업이 사육사로 알려지길 꺼린다면 그 직원은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인정한 셈이다.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하면 세심하지 못하며 허투루 일할 수도 있어 사고가 날 가능성 또한 높다. 그런 사람은 마음을 고쳐먹어야 사고도 안 나고 남은 인생이 즐겁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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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사가 동물사에 들어가려면 안쪽으로 밀고 들어가게 만들어야 한다. 만약에 문을 밖으로 열고 들어가게 만든다면 예기치 않게 동물이 탈출할 때 막기 어렵다. 우리 밖으로 밀고 나온 동물의 힘을 감당하기 어렵단 얘기다. 하지만 안쪽으로 밀고 들어가는 문이라면 동물이 힘으로 문을 밀면 자연스럽게 닫힐 수밖에 없다.

문고리 또한 마찬가지다. 문을 닫자마자 철커덕 걸림 장치가 작동되게 해야 한다. 이중문도 필수다. 이중문이란 아파트 이중창과 다른 개념이다. 문 하나를 열고 한두 발 더 들어가 문 하나가 또 있다. 문 하나를 더 둬 동물탈출을 막기 위한 장치다. 이쯤은 국내 동물원에서 다 갖춰져 있다. 만약에 이렇게 안 된 곳이 있다면 이참에 개선해야 한다.

퓨마가 더 당황했을 것이다

국내 동물원에서 퓨마가 동물원을 탈출했다며 언론에서 시끄러웠다. 사람을 공격할지 모르니 피하라는 안내 문자도 발송했다. 퓨마가 만나는 사람마다 족족 덤벼들어 공격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맹수일지라도 자기에게 무관심하면 공격하진 않는다. 동물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더 물러날 곳이 없거나, 자기를 공격할 낌새를 느꼈을 때 공격한다. 그래서 동물탈출 시 안내문자의 내용도 달라야 한다. ‘퓨마를 만났을지라도 섣불리 접근하거나 공격하지 마세요’라는 안내가 사고를 줄일 수 있다.

사람이 해코지 할까 봐 탈출한 퓨마가 무서워할까? 퓨마가 공격할까 봐 사람이 무서워할까? 우왕좌왕하던 퓨마가 공격할지 모르니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히 사람보다 퓨마가 더 당황했을 듯싶다. 아무리 맹수일지라도 아무 곳에나 활개를 치고 다니지 않는다. 평소에 다니던 길을 더 선호한다. 맹수는 물론 초식동물, 심지어 나비도 자기가 잘 다니는 길을 좋아한다. 동물은 발바닥에 땀샘이 있어 걸음을 뗄 때마다 냄새로 흔적을 남긴다. 나중에 그 냄새를 따라 되돌아간다.

우리를 빠져나온 퓨마가 평소에 다니지 않은 곳으로 갔으니 당황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평정심을 찾을 때쯤 발바닥 흔적을 따라 살던 곳으로 오게 돼 있다. 퓨마를 포획하는 과정에 이점을 염두에 뒀더라면 사육장 근처에 덫을 놓거나, 숨어 있다가 마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사살하지 않고 생포할 수도 있었단 얘기다.

안전교육은 지나쳐야 한다

어느 직장이건 신규직원 교육은 필수다. 교육받느라 투자했던 시간 이상으로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어서다. 진급할 때마다 교육을 받고, 보수 교육도 받는다. 보수 교육은 한의사, 의사, 치과의사 등 중요한 일을 하는 직업군에겐 필수다. 동물이 탈출하면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 있어 사육사도 중요한 직업군 중 하나다. 그래서 위험수당도 받는다.

이런데도 동물원에 신규 사육사가 뽑히면 현장에 즉시 투입하기 바쁜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일손이 없고 바빠서 그렇다. 물론 간단한 업무 교육과 선임사육사에게 배우는 시간은 있다. 매월 한번씩 하는 직원 교육도 대부분 생태교육으로 지식전달 정도다. 기존 사육사일지라도 담당할 동물이 바뀔 경우 전임자에게 안전근무 수칙을 반드시 듣고 일을 해야 한다. 다른 직업군의 보수교육처럼 업무를 내려놓고 며칠씩 심도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해 보인다.

안전교육은 지나칠 정도로 강화해도 괜찮다. 이 교육에서 심도 있는 안전교육, 동물원의 역할과 기능, 사육사의 역할 등 직급에 따른 보수교육을 하면 더 발전하지 않을까? 사고도 확 줄지 않을까? 이참에 동물원 사육사 보수교육을 들여다보고 개선하면 좋겠다.

전 서울동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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