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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퓨마가 던진 숙제…동물원 폐지·사살 책임 묻는 청원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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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대전 동물원을 탈출한 퓨마가 탈출 4시간30여분만에 사살됐다. 사진은 사살된 퓨마.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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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물원에서 탈출했다 사살된 퓨마가 한국 사회에 ‘숙제’를 던졌다. 탈출한 동물을 꼭 사살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돼, 동물원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퓨마가 있던 대전오월드의 폐쇄와 사살 책임을 묻는 청원이 봇물을 이뤘다. 이날 정오까지 관련 청원이 60건을 넘어섰고, 몇몇 청원은 2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이 청원들에는 좁은 우리에 갇혀 있다가 동물원 측의 관리 소홀로 숨진 퓨마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깔려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동물원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일부 시민들은 동물원의 관리 소홀로 불거진 사고라는 점, 퓨마가 동물원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추가 마취 없이 사살한 점을 들며 아예 동물원 문을 닫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원인이 가장 많은 ‘동물원을 폐지해주세요’ 글은 “야생동물이 동물원에 있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고문”이라면서 “동물이 스트레스만 받게 하는 동물원을 폐지해달라”고 했다. 글을 올린 사람은 “퓨마는 자신의 본능대로 움직인 것이지 절대 총살당할 일은 아니었다”면서 동물의 야생 본능을 억누르는 동물원의 존재 자체에서 근본 원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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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퓨마 사살 비판 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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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마는 전날 오후 4~5시쯤 직원 부주의로 문이 잠기지 않은 사육장에서 탈출했다. 마취총을 맞았지만 마취가 풀리면서 다시 활동해 밤 9시44분쯤 오월드 내 야산에서 사살됐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퓨마가 재빨리 움직이는 데다 사람을 보기만 하면 도망가는 바람에 생포하기 쉽지 않았다”면서 “시민에게 피해를 줄 우려가 있어 숙의 끝에 사살했다”고 밝혔다. 날이 어두워지고, 자칫 동물원 울타리를 넘으면 통제가 불가능해 사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은 19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동물원의 관리소홀 책임을 물어 행정 처분을 하기로 했다. 퓨마는 이 법에서 보호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위반 횟수와 정도에 따라 경고, 폐쇄 1개월, 폐쇄 3개월, 폐쇄 6개월 등의 행정처분이 내려진다. 가장 강력한 처분은 ‘사육 금지’로, 아예 동물원을 폐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고강도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은 적다. 이동춘 금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장은 “1개월 폐쇄 처분을 내리고, 이 기간 동안 동물 전시를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멸종위기종 관리시설 기준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관리 부실 문제가 불거진 만큼 관내 모든 동물원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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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대전동물원에서 퓨마 1마리가 탈출해 경찰과 소방당국이 수색하고 있는 가운데 퓨마가 탈출한 사육장 문이 열려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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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퓨마는 2010년 태어난 암컷으로 몸무게가 60㎏가량 된다. 빅캣(고양이과 대형포유류) 중의 하나인 퓨마는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이다. 평원이나 사막에서 열대우림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서식하며, 시속 80㎞까지 달릴 수 있다. 동물원은 애당초 이 종의 습성과 배치되는 공간이다. 활동범위가 넓은 동물을 좁은 동물원 공간에 가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동물원의 기능과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청와대 청원으로 표출된 셈이다.

외국에서는 동물원을 자연친화적으로 만들고 멸종위기종 복원이나 서식지 보전으로 기능을 전환하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 그러나 국내 동물원 대부분은 여전히 인간을 위한 ‘오락’ 기능에 치우쳐 있다. 대전도시개발공사에서 운영하는 대전오월드는 동물원, 꽃동산, 놀이시설을 갖춘 ‘중부권 최대 테마공원’이라고 홍보한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원이 존립하는 이상 퓨마 탈출 같은 사건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며, 경위를 조사해 동물원 체계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는 “현재 보유한 동물들을 생각하면 당장 동물원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으며, 동물원 관리 체계 전반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동물원 맹수관에선 사육사가 2인1조로 들어가고 CCTV로 제3자가 지켜보는 시스템이 갖춰줘야 하며, 사육사도 이런 절차가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사육장 청소를 마친 직원이 문을 잠그지 않은 게 문제였다. 또 동물원 측이 적절한 양의 마취제를 주사하지 못해 퓨마가 다시 깨어났다. “직원의 숙련도가 떨어지고, 수의사도 여러 동물을 관리하다 보니 개별 동물종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대표는 “멸종위기종 보존을 동물원의 존립 목적으로 삼고 예산을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면서 “생태적 기능을 수행하는 ‘좋은 동물원’을 늘리고, 동물을 오락 수단으로 소비하는 ‘나쁜 동물원’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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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갇혀 있는 퓨마. | 연합뉴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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