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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투자자 심증이 현실로…가상통화 거래소, '봇'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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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드, 봇 사용해 시세 형성 시인
"사용 안한다더니…" 투자자 패닉

봇에 대한 시각차 '극과 극'…유동성 공급 VS 사기
재판부 "개장 후 활황으로 보이는 외관 형성" 지적

"위법되나"…업계, 재판부 최종 결정에 촉각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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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호윤 기자]투자자 A씨는 가상통화 거래를 하다 이상한 대목을 발견했다. 이더리움 10개를 개당 30만원에 구하려고 했지만, 호가창이 1초에 수십 번씩 변동하는 바람에 원하는 가격의 물량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A씨는 "이더리움 1개당 30만원에 사려고 했지만, 호가창이 0.1초 단위로 30만원보다 높은 30만500원, 30만1000원으로 움직였고, 결국 호가창을 긁어 30만1000원에 샀다"며 "이상하게도 30만원에 사겠다고 주문을 넣는 순간, 그 가격보다 비싼 매물이 즉각 생겨났다"며 의아해 했다.

투자자 B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는 보유 중인 이오스를 개당 6500원에 처분하려고 했는데 그 가격 아래로 호가창이 줄줄이 생겨났다. 그는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가를 잡다 보니, 결국 손절 처리한 셈이 됐다"고 했다. 그는 "급하게 변동하는 시세를 보니, 더 떨어질 것 같다는 급한 마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가상통화 거래소가 일명 '봇 프로그램'을 이용해 거래량, 가격 등에 손을 대고 있다는 투자자들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 코미드가 시세 형성을 위해 봇 프로그램을 사용했다고 시인했다.

18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형사부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최우혁 코미드 대표에게 "피고인은 속칭 봇 프로그램 사용이 투기 세력으로 인한 가격 왜곡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고 하자 최 대표는 프로그램 사용을 시인했다. 그동안 가상통화 거래소가 봇을 통해 공정 거래를 저해하고 있다는 일부 투자자들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최 대표는 봇을 통해 주식시장처럼 유동성을 공급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은 일반적인 시장 조성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본다. 봇 등을 통해 거래가 활성화한 것처럼 꾸며 거래소에 고객들을 유인했다고 보고 있다.

재판부도 "거래소 개장 이후 활황으로 보이게 하는 외관이 형성됐다"며 "실제 거래한 것보다 훨씬 많은 거래가 체결된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맞서 최 대표는 "그렇지 않다. 실제 보여줄 수 없어 답답한 부분"이라며 반박했다. 이어 최 대표가 "체결률이 나와있다"고 주장하자, 재판부는 다음 기일까지 코미드 거래소 내 체결 비중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를 증거 자료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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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은 세력들의 가격 조작을 막기 위해 거래소가 봇을 사용한다는 주장에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종종 글로벌 큰손으로 불리는 세력(고래)들이 특정 거래소 지갑으로 비트코인 1만개 등 대규모 물량을 보내면, 가상통화 커뮤니티에는 "비트코인 1만개 A 거래소로 갔다" 등의 비상 경보가 울린다. 고래가 A거래소에서 매수 혹은 매도 포지션을 취하겠다는 일종의 신호다. 세력은 자금을 이용해 매수벽, 매도벽을 세워 현금화하거나 개인 투자자들의 물량을 싼값에 빨아들인다.

이런 상황에서 거래소나, 투자자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속도, 자금력 측면에서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거래소도 세력의 장난으로 시장이 출렁일 때 물량을 잡을 것이라는 게 투자자들의 시각이다. 세력에 맞서기 보다는, 개인 투자자들의 물량이 시장에 대량 풀릴 때 저점 매수하는 게 남는 장사일 것이란 추측이다.

업계는 재판부의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위법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주요 가상통화 거래소들은 봇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투자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투자자들은 "거래소 봇이 제시하는 가격 윗단에서 매수, 아랫단에서 매도할 수 밖에 없어 손해를 보는 구조"라며 "이렇게 발생한 차익은 고스란히 거래소 자산이 되는 셈"이라고 토로하면서,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조호윤 기자 hod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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