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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메르스 확진자, 그는 어떻게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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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메르스 공포①] 메르스 확진자 대처 논란

세계일보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하며 3년 만에 메르스 공포가 국내에 다시 드리웠다. 쿠웨이트에서 입국한 A(61)씨는 본인의 몸에 이상을 느껴 택시를 타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A씨는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고, 당시 환자를 비롯한 민간 부문이 빠르게 대응해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A씨가 공항으로 마중 나오는 아내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권유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분위기 확 바뀌었다. A씨가 입국 전부터 메르스 감염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생긴 것이다.

A씨를 향한 비난이 거세게 일었고, 메르스 감염 ‘피해자’는 국내에 메르스 공포를 가져온 ‘가해자’로 변해갔다. 메르스 의심환자들이 잇따라 ‘음성’판정을 받으며 공포는 한풀 꺾였지만 환자와 아내는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민간의 빠른 대처’ 평가받은 메르스 확진자 발표 초기

A씨는 업무차 쿠웨이트에 들러 지난 7일 국내에 입국했다. 당시 A씨는 공항 휠체어를 탈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발열증상이 심하지 않아 입국 검역시스템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는 공항 검역 과정에서 “10일 전 설사를 했는데 지금은 괜찮다. 복용하는 약이 없다”고 말했다.

중동에서 설사증상을 호소한 A씨는 의사 지인의 조언에 따라 공항에 나오자마자 개인택시를 타고 서울 강남의 삼성서울병원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아내는 승용차로 병원까지 따로 이동했다.

병원에 도착한 A씨는 곧바로 바깥공기와 차단된 음압병실로 이동해 진료를 받았고 메르스로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 과정까지 A씨와 접촉한 항공기 승객과 승무원, 공항 검역관, 공항 휠체어 도움요원, 입국심사관, 택시기사, 병원 의료진, 아내 등 21명만이 밀접접촉자로 분류됐다. A씨의 확진판정이후 서울대병원까지 이송할 때까지 병원은 방문객을 통제하는 등 발 빠른 대처에 나서 3년 전과 같이 병원에서의 감염은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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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인천시 중구 대한항공 인천 정비 격납고에서 메르스 확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대한항공 두바이발 인천행 항공기 기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마스크 착용하고 와” 발언에 가해자로 몰린 확진자

하지만 감염 피해자 A씨에게 여론의 화살이 향하기 시작한 건 공항으로 마중나 온 아내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역학조사관은 9일 회의에서 “A씨가 특별한 호흡기 증상과 발열이 없다고 했는데 아내가 공항으로 마중 나올 때는 ‘마스크 착용하고 오라’라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아내가 자가용으로 공항에 왔는데 본인은 병원으로 이동할 때 본인은 리무진 택시를 타고 따로 이동했다”고 했다. A씨가 확진 전부터 메르스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론은 들끓었다. 아내에게만 메르스를 조심시켰다는 이유로 A씨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간 것이다. 누리꾼들은 관련 뉴스에 “두바이에서 뭘 했기에 메르스가 걸려오나” “자기 가족에게 옮길까봐 걱정하면서 택시기사 건강은 우스웠나?” 등의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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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아내 “면역력 약해 마스크를 사용한 것”

A씨의 아내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해명에 나섰다. 아내 B(55)씨는 지난 13일 한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남편이) 마스크를 쓰고 나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며 “2년 전 폐렴을 앓아 면역력이 약해져 공항이나 여행을 갈 때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B씨는 남편과 따로 병원까지 이동한 것에 대해서는 “남편 귀국 전 ‘공항에 나가겠다’고 문자를 했는데 답이 없었다. 내가 차를 가지고 간 것을 남편이 알지 못했을 수 있다.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미리 예약했는지 만난 지 5분만에 택시가 왔다”고 해명했다. B씨는 “남편을 먼 주차장까지 데리고 가 차에 태우기보다 택시를 타는 게 빠르고 편할 것 같았다”고 했다.

B씨는 “남편이 메르스를 인식했다면 한국에 오지 않았거나 최소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왔을 것”이라며 “메르스의 전형적인 증상인 기침과 열이 없었고 쿠웨이트의 다른 사람들도 아무 증세를 보이지 않아 본인이 메르스 생각을 못한 것 같다”며 A씨가 메르스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혹들을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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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입국 검역 시스템을 통과하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전문가 “메르스 환자는 ‘피해자’지 ‘가해자’ 아냐”

물론 B씨가 마스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스크를 하게 된 경위에 대해선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측과 확진자 가족의 설명이 전혀 다른 상황이다.

최보율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은 이와 관련,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메르스 중간 현황 브리핑’에서 “환자들이 일반 주민들과 갈등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환자와 의심환자 모두 어디에선가 감염된 사람, 그분들 역시 피해자”라고 확진자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최 이사장은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격리를 받으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며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참여하고 자기를 희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확진환자와 의심환자 모두 ‘가해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는 ‘피해자’라는 것이다.

그는 “그분들에 대해 방역당국은 물론 사회, 일반 국민들도 존중하며 그분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그다음에 그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할 것인지에 대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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