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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영장농단 의혹’에도 ‘영장 무풍지대’ 신광렬 부장판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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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판사비리 수사기밀 ‘직보’, ‘영장지침’ 준 의혹

“정보교환…” 압수수색 영장 기각에 의문 증폭

①‘윗선’ 가교 고법부장 엄격하게 심사

②영장판사들과 개인적 인연 작용했나

③‘후폭풍’ 고려한 ‘안방 지키기’ 작용했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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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 핑계 대던 수준을 넘어섰다.”

사법농단을 수사 중인 검찰이 청구한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현 서울고법 부장판사) 압수수색 영장이 연거푸 기각되자 일부 법조인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차관급인 신 부장판사는 2016년 검찰의 비리 법관 수사를 막으려고 영장전담판사들로부터 보고받은 검찰의 수사 내용을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직보’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특히 뇌물수수 의혹 판사들의 부모와 배우자, 자녀의 이름 등을 영장판사들에게 전달하며 “검찰이 영장에 이 사람들을 끼워 넣을 수 있으니 놓치지 말고 잘 보라”는 ‘지침’까지 하달했다는 의혹까지 드러났다. 검찰은 신 부장판사에게 19일 오전에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고 18일 밝혔다.

앞서 검찰은 신 부장판사 관련 압수수색영장을 두 차례 청구했지만, 법원은 “기관 내부에서 정보를 주고받은 것”이라며 모두 기각했다. 지난 7월말 신 부장판사는 “예규대로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 예규(‘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보고’) 및 그간의 ‘관행’에 따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중대사건’, 전·현직 법원 공무원 등 사건의 공소장 및 구속영장을 보고했을 뿐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해당 예규는 아직 재판에 넘어오지 않은 사건의 구속·압수수색영장에 대해 발부·기각 뒤 ‘최종(종국)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법원 내부에선 “행정처가 일선 영장판사에게 지침을 주는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 ①‘윗선’ 가교 고법부장 잇단 영장기각 배경을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대법관 등 윗선과 연결고리로 꼽히는 고법부장급 인사의 영장심사를 더 엄격하게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뚫리면’ 곧바로 또 다른 전직 고위법관 등으로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제껏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내준 고법부장급 인사는 이민걸 전 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현 서울고법 부장) 정도다. 이들은 대법원 자체조사에서 책임이 일부 인정돼 재판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징계에 회부됐다.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처음 이름이 등장한 신 부장판사와는 다른 경우다.

또 신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가 아닌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할 때 재판거래에 관여했다는 점도 법원으로선 뼈 아픈 대목이다. 지금껏 ‘양승태 법원행정처’에 몸담았던 일부 인사에 제한적으로 ‘허용’됐던 검찰의 강제수사가 일선 법원으로 확대되면 비슷한 의혹이 불거진 다른 고위법관들의 영장을 막을 명분이 없어진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 ②영장판사들과 인연 신 부장판사에 대한 일종의 ‘동료애’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현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지난해 형사단독 재판을 맡았을 때, 신 부장판사는 형사수석부장을 지내며 형사재판 사법행정을 총지휘했다. 지금도 영장전담 판사들과 같은 건물(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청사)을 쓰고 있다. 한 판사는 “같은 공간에서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의 영장을 발부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 ③‘안방 지키기’ 작용했나 ‘수사 기밀 유출’ 의혹은 다른 ‘재판거래’ 사안과 결이 다르다는 점도 법조인들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일제 강제징용 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송, 통합진보당 소송 등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사건은 대개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이다. 검찰(법무부)과 직접 관련성이 적거나 없고, 재판이 시작된 이후 개입이 이뤄진 것으로 의심되는 사안들이다.

반면 이번 법조비리에서 행정처의 개입은 검찰 수사 단계부터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영장심사 과정에 행정처의 개입이 있었다고 확인될 경우, 다른 영장에 대해서도 같은 의혹이 줄줄이 제기될 수 있다. 한 판사는 “구속영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장은 철저하게 비공개 서면심사로 진행되는 까닭에, 영장 결과에 의구심이 있어도 그 과정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영장지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제껏 심사가 미진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던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같은 의혹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법원 안방 지키기’ 역시 영장 발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신 부장판사를 압수수색하면 그에게 수사 내용을 보고했던 영장판사들을 강제수사하는 것도 불가피해진다. 2016년 당시 영장판사들이 썼던 컴퓨터가 압수수색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데, 이 컴퓨터는 현 영장판사들이 쓰고 있다. 한 판사는 “영장판사 스스로 제 물건 압수영장을 어떻게 내주겠느냐”고 했다.

신 부장판사 사무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신 부장판사는 유해용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현 변호사)에 이어 서울고법 민사33부 재판장을 맡고 있다. 유 변호사 사무실을 고스란히 쓰는 셈이다. 유 변호사는 2014~16년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 시절 확보한 재판연구관 보고서 등을 지난 2월 퇴임 당시 무더기 반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신 부장판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될 경우, 유 부장판사 혐의를 엿볼 증거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에 세 차례 걸쳐 ‘빗장’을 건 바 있는 법원으로서는, 신 부장판사 사무실 압수수색을 통한 ‘우회로’를 내줄 수 없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거라는 풀이가 나온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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