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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남북 철도 연결되면 물류 패러다임에 큰 혁신”…“대북 제재 감안할 때 인프라 투자는 어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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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협회·미 CSIS 공동 개최 ‘리커넥팅 아시아 콘퍼런스’

경향신문

한국무역협회와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18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리커넥팅 아시아(Reconnecting Asia)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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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남북정상회담 첫날인 18일 서울 광화문에선 ‘리커넥팅 아시아(Reconnecting Asia) 콘퍼런스’가 열렸다. 리커넥팅은 ‘다시 연결한다’는 뜻으로, 남북한 간 단절된 철도를 연결해 ‘신북방철도 실크로드’ 시대를 열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다. 한국무역협회와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개최한 이날 행사에는 아시아 국가 협력사업에 관심이 있는 기업인 200여명이 참석했다.

기업인들은 남북 간 철도가 연결되면 현재 해상에 의존하는 물류 패러다임에 큰 혁신이 일어날 수 있고,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 미국 인사들은 대북 경제제재가 엄존하는 현실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투자가 이뤄지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 “철도 연결 시 운송시간 획기적으로 단축 가능”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들은 현재 해외에 물건을 보낼 때 대부분 컨테이너에 실어 바다를 통해 운송한다. 해상운송은 가격이 싸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유럽이나 러시아 등으로 운송하는 데 평균 40~45일 소요된다. 선박 사고가 자주 난다는 점도 리스크다.

최근에는 중국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는 분위기도 있다. 항공운송은 단기간 운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대량 운송이 쉽지 않다. 철길을 이용한 수송이 이러한 해상·항공운송의 대체재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게 기업들의 생각이다.

물류유통 회사인 현대글로비스는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약 1만㎞를 잇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활용해 주 1회 블록트레인(급행 화물열차)을 지난달 8일부터 운행 중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TSR의 동쪽 끝 출발점이고,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쪽 종착지이자 현대차 공장이 있는 곳이다. 구형준 현대글로비스 전무는 “해외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더라도 부품의 60% 이상은 국내 부품사를 통해 조달한다”며 “부품을 공급할 때 TSR을 이용하면 시간이 단축되고 재고나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 전무는 “지금은 부산항에서 배로 컨테이너를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보낸 뒤 거기서 기차에 환적해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간다”며 “동해선을 통해 나진~하산으로 연결되면 바로 TSR로 이어져 비용이나 업무 효율성 면에서 상당히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선 CJ대한통운 포워딩본부장은 “일례로 지금은 미국 업체의 비타민 제품을 한국으로 들여와 동남아나 중국으로 항공운송하고 있어, 내륙 쪽에 판매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철도가 연결된다면 한국과 유럽 사이의 철로 인접 국가 64개국에 물건을 다 배송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태림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기획조정관은 “ 서독이 소련과의 가스관 사업으로 독일 통일을 슬기롭게 이뤄냈듯이 문재인 대통령의 철도공동체 구상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 “남북 합의 시 당장 서울~평양 철도 운행 가능”

현재 남북 간에는 경의선, 동해선 등이 연결돼 있다. 서울~개성~평양~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복원사업이 논의된 후 2003년 연결식을 군사분계선에서 열기도 했다. 동해선은 2005년 시설공사가 완료된 뒤 2007년 시험운행까지 실시했으나 이후로는 진전이 없는 상태다.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은 “경의선은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기차가 시속 40~50㎞까지 속도를 낼 수 있어, 남북 정상 간 합의만 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화물철도로 운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 운행을 위해선 인프라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구형준 전무는 “러시아의 경우 통과하는 절차가 까다롭고, 중국은 궤도가 우리와 달라 레일을 자동으로 조정할 장치 등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특히 해상운송은 구조조정 여파로 가격이 매년 낮아지고 있는데, 철로운송 역시 가격을 지금보다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 원장은 “페덱스(FEDEX), DHL 등 다국적 물류기업과 한국 기업이 물류 합자회사를 만들어 함께 투자하고 이익을 나누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 “대북 제재 있는 한 북한 인프라 투자 쉽지 않아”

미국에서 온 전문가들은 워싱턴 조야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냉정한 시각을 유지했다. 북한이 비핵화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지 않는 이상 대북 제재가 해제되기 어렵고, 그런 여건하에서 기업들이 북한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리사 콜린스 CSIS 연구원은 “여러 기술적 장벽을 생각해볼 때 북한의 경우 아직 한계가 있다”며 “트랜싯 포인트(환승지점)를 더 구축해야 하고, 사고 시 화물을 어떻게 복구할지, 철도와 관련된 데이터의 투명성을 어떻게 높일지 등의 과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상황이고 유엔과 미국 등의 경제제재를 감안할 때, 북한에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 경제제재가 해제되지 않는다면 경제적 참여는 현재로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 인프라 개발 및 경협을 위해 필요한 자금 조달 방법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미리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콜린스 연구원은 “한국의 경제 상황이 별로 좋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전반적인 지지도가 떨어지는 상황이어서 북한 인프라 개발을 위해 세금을 더 거두는 게 쉽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철도 등의 연결을 통한 아시아 경제통합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존 햄리 CSIS 회장은 “미국으로선 북한이 중국과 경제적으로 통합돼 중국의 일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북한이 한국 경제와 통합될 것인가 하는 방향성에 대한 전략적인 이해관계가 있다”며 “한국과 북한이 통합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은 사실상 중국의 하나의 성(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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