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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새삼 느끼는 영화판 ‘괴생명체’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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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물괴>

미술·특수분장 리얼리티 높고

괴물 형상화한 CG 뛰어나지만

비시각적 리얼리티는 취약해

‘물괴’ 공개로 서스펜스 떨어지고

관객 몰입·감정이입도 어려워

올해 가장 어이없는 해피엔딩

‘흥행작=걸작’이라는 주문 그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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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 전 화면 한가운데로 떠오르는 ‘이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중종 22년에 실린 기록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자막, 그리고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중종실록 중에서’라는 자막과 함께 당 영화의 주연 괴물인 ‘물괴’(物怪)에 관한 기록과 그에 대한 낭독, 그리고 이로도 모자라 말미에서 자막으로 한차례 중종실록에서 발췌한 관련 기록이 인용된다. 더구나 메인 카피 앞에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괴이한 짐승’이라는 부연설명 또한 붙어 있다.

‘물괴’의 리얼함

이렇듯 <물괴> 주최 측에서 강조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에 실제로 등장’이라는 포인트로 인해 우리는 ‘물괴’라는 괴물과 그것을 다룬 방식의 리얼함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일단 시각적인 면에서의 리얼함부터 얘기한다면 주연괴물 ‘물괴’를 형상화해낸 이 영화의 컴퓨터그래픽(CG)의 품질은 십분 수긍 가능하다.

사실 극심한 척추만곡과 백내장 증상을 앓고 있는 시추를 대략 30배 정도 키운 다음 털을 전부 흑색으로 염색한 뒤 10년쯤 목욕을 시키지 않은 것 같은 물괴의 형상 자체가 그다지 인상적이라고 할 순 없겠다. 하지만 그 털 많은 짐승을, 더구나 그 맡은 바 역할로 인해 털(특히 입 주변 털)에 점도 높은 액체 자주 묻히게 되는 짐승을 만들어내고, 롱숏부터 클로즈업까지 다양한 숏으로 그것을 표현하고(‘물괴’는 그 사이즈가 워낙에 큰지라, 근방에 있는 사람을 풀숏으로만 잡아도 클로즈업이 되고 마는 컴퓨터그래픽 난이도 높은 숙명을 타고났다), 그 움직임을 그 주위를 둘러싼 인간들의 부딪치고 물리고 던져지고 도주하는 종합액션과 함께 표현해내는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작업을 큰 조잡감 및 위화감 없이 해낸 것은 충분히 훌륭했다 할 것이다.

거기에 컴퓨터그래픽 이외의 시각적인 부분, 즉 세트를 비롯한 미술과 분장, 특수분장 등에서의 리얼리티 함량을 제고하려는 노력 역시 거론치 아니할 수 없겠다. 영화 초반에 서스펜스 호러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집중 투입되고 있는 각종 훼손 시신들의 묘사도 그렇거니와, 예컨대 영화 초반의 계곡물 고기잡이 장면에서 인물들이 그물 대신 키(쌀에서 쌀겨를 털어내는 기구)를 쓰고 있다든가 등등의 설정은 상당히 세심한 것이었다. 즉, 퓨전 또는 고전의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최소한의 고증이나 리얼리티조차 신경 쓰지 않던 수많은 족보 불명의 사극에 비한다면 <물괴>는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시각적 예의는 갖추고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관건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리얼함 또는 설득력이다. <물괴>가 가장 큰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괴>의 서스펜스에 관한 부분이다. 영화는 인왕산에 출몰하여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는 ‘물괴’라는 괴이한 짐승에 대한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두고 대신들과 임금인 중종이 논쟁을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논쟁은 사실 이 영화의 심장 같은 대목인데, 왜냐하면 주인공 ‘윤겸’(김명민)은 이 논쟁을 불식하기 위한 수색대장(=‘물괴’의 존재 여부를 추적하는 탐정)으로서 영화에 투입되고 있으며, 또한 호시탐탐 왕위를 넘보는 악의 축인 영의정(이경영)은 왕위 찬탈을 위한 지렛대로서 백성들 사이에 퍼진 ‘물괴’ 관련 루머를 이용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 윤겸은 영화 전반부 내내 이어지는 수사/추리/수색/추적 과정을 통해 이 ‘물괴’ 루머가 누군가의 조작이라는 것을 마침내 밝혀내고, 영화는 곧바로 이것이 영의정이 자신의 오른팔인 ‘착호갑사’(박성웅)를 사주하여 만들어낸 기획루머였음을 깜짝 반전인 듯 폭로한다.

자, 이 대목에서 ‘뭐 이런 무개념 무뇌충 스포일러가’라는 비난과 질타의 돌을 던지시려는 독자 계실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고정하시길. 이는 결코 스포일러가 될 수 없음이다. 왜냐. 필자에 훨씬 앞서 <물괴>의 주최 측이 이미 자신의 포스터나 예고편 등등을 통해 물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및 그 실물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물괴는 실재하는 괴물인가 루머인가’를 둘러싸고 벌이는 영화 전반부의 논쟁/수사/추리 등등은 물론, 사람들을 습격하는 괴생명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추구되는 서스펜스는 애초부터 불발의 운명을 타고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예고편에서 이미 물괴 다 보여줬으므로.

맞다. 하긴 그렇다. 전반부의 김빠짐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체 스포일러를 감행한 주최 측의 고뇌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엄혹한 추석 영화대전의 와중에서, 영화의 간판이라 할 물괴의 컴퓨터그래픽을 한 컷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영화를 홍보해내는 것은,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스킨스쿠버를 하려는 것과 거의 진배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해에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시각적 특수효과(VFX), 서스펜스와 더불어 영화를 받치고 있는 3대 지지대라 할 인물들 간의 감정에서의 허술함 때문이다.

사실 이 대목이야말로 <물괴>뿐 아닌 모든 ‘오락’ 영화의 최대 승부처인 것은 재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인데, 뭐, 이러한 대박지향적 카인드 오브 무비에서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해부학적 통찰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기초 상거래질서 위반행위이겠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주인공의 충복은 원체 의리 있고 정 많은 사나이다. 끝’이나, ‘주인공 딸과 젊은 미남 무사는 서로 첫눈에 반하였다. 끝’ 같은 식의 일방통고식 감정처리를 채택하는 것 또한 곤란하다. 관객의 몰입과 감정이입이 최우선 당면과제인 ‘오락’ 영화를 표방한다면 적어도 인물들의 감정에 관객이 힘들이지 않고 승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계단(즉, 과정)은 설치해줘야 마땅했다.

이런 문제가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대목은 주요 인물들이 뛰노니는 메인 플랫폼이 되는 ‘민심’, 즉 백성들의 감정을 처리하는 대목이다. 생각해보자. 악의 축인 영의정은 ‘물괴’ 관련 루머로 민심을 동요시켜 왕위를 찬탈하려 했고, 주인공은 그것을 밝혀 왕을 보호하려 했다. 그러니까 루머 ‘물괴’였건 실물 크리처 ‘물괴’였건, 결국 ‘물괴’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였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백성들의 감정을 흔들고 움직이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는 막판 하이라이트에서 주인공의 딸은 ‘여러분, 저자가 진정한 나쁜 놈!!’이라는 취지의 대사 몇마디를 외치고, 이 몇마디 덕분에 이제껏 영화가 공들여 묘사해온(실제로 그것은 영화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영의정의 은밀한 야비 행각, 즉 물괴를 이용해 왕을 헐뜯어 민심을 얻으려는 야욕은 단번에 뒤집혀버린다.

여기에서 핵심은, 백성들이 이러한 폭로 몇마디에 영의정에 즉각 반기를 들 만큼 주인공 딸과 백성들 사이에서의 정서적 교류 및 신뢰구축 과정이 있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각종 추리/호러/액션/코믹/어드벤처 등등을 소화하는 데 분주한 나머지 이런 부분을 거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놓치고 있다. 하여 사필귀정적 메시지가 얹어진 인과응보적 통쾌미가 폭발해야 마땅할 이 장면은, 안타깝게도 전반부의 서스펜스만큼이나 저조한 폭발력을 보인다.

흥행작이 걸작?

다량의 컴퓨터그래픽은 물론이고 사극에 액션캠을 도입한 검투 장면을 시도하는 등 시각적으로 상당한 공을 들인 이 영화가 이리도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다만, 가장 큰 원인은 ‘안전성이 검증된’ 각종 설정들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물괴>가 그리도 강조한 ‘조선왕조실록에 실제 등장’이라는 포인트만 해도 어언 <대장금> 시대까지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설정이다.(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의 곳곳에서 <대장금>의 흔적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거기에 <조선명탐정>으로 흥행성이 검증된 김명민표 사극 추리극 및 코미디를 가미하고, 그 곁에 <광해>의 매력적인 충복 김인권의 코미디와 액션을 배치하고, 등등등, 등등등.

그리하여 이 영화는 아마도 올해의 가장 어이없는 엔딩에 자리매김되어도 큰 무리가 없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고 있는데, 이런 해피하지 아니한 해피엔딩이 이제는 딱히 놀랍지도 않은 것을 보며 우리는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영화판 안팎을 어슬렁거리는 괴생명체의 존재를. ‘흥행작이 곧 걸작’이라는 주문을 숨소리처럼 내뱉는 물괴들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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