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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따라… ‘아관파천’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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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 당시 고종 지났던 길 10월 공개

120m 남짓 짧지만 아픈 역사 흔적 가득

치욕의 길이나 후손에는 또다른 명소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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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오얏꽃’ 망울이 자리를 잡기도 전이다. 아마 겨울바람이 매서웠을 것이다. 겨우내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았을 1896년 2월11일 새벽. 고종은 궁에서 나와 아라사(러시아의 옛말) 공사관으로 향했다. 뒤뜰의 쪽문으로 궁을 빠져나왔다. 몸은 궁녀가 타는 작은 가마에 숨겼다. 새벽녘의 어스름이 이목을 가렸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궁을 버리고 외국에 몸을 의탁한 사건. 아관파천이다.

닫혀 있던 ‘고종의 길’이 다시 열렸다.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는 120m의 길이다. 미국 대사였던 앨런이 ‘킹스로드’라고 기록한데서 시작했다. 덕수궁 후문에서 시작해 현재도 쓰고 있는 영국대사관을 지나 옛 러시아 공사관(사적 253호)이 있던 정동공원으로 이어진다. 미국 대사관저 내에 있던 땅을 2011년 토지교환을 통해 반환받았다. 3년여 동안 석축을 다시 쌓아 복원 및 재정비해 10월 일반에 정식 개방한다.

깔끔하게 정돈한 ‘고종의 길’ 담장 너머로 우리 근대사의 아픔이 보인다. 길을 걷다 마주하는 구세군 중앙회관은 한때 덕수궁의 일부였던 땅이다. 일본의 상인들이 점거하고 근대식 건물을 세웠다. 한때 미국 대사관저로 사용했던 조선저축은행 사택은 일제의 한반도 수탈의 상징이다. 길을 정비한 문화재청은 사료에 남은 덕수궁의 옛 모습을 패널에 담아 함께 공개했다. 부강한 나라를 꿈꿨으나 이루지 못하고 좁은 길을 따라 도망치듯 궁을 빠져나가야 했던 고종의 삶이 또렷하다.

미국대사관과 마주한 담장을 지나자 마지막 솟을대문과 마주한다. 이곳만 지나면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곳이다. 한국전쟁으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대한제국 당시 러시아의 위상을 상징하는 하얀 탑은 건재하다. 야트막한 언덕에 있어 정동에서 가장 높았다. 러시아는 이곳에 무수히 많은 깃발을 세우고 일대를 내려보았다고 한다. 그 탑을 보며 고종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일국의 군주가 행차하기에 비좁은 2m 남짓한 마지막 문을 통과하면서 말이다.

고종에게 치욕의 길이었으나 후손에겐 좋은 산책로다. 미국대사관과 영국대사관이 닫았던 철문을 여니 덕수궁을 한 바퀴 도는 1km의 둘레길이 완성이다. ‘고종의 길’은 지난 8월 시범 개방했는데 인근의 직장인과 휴식하려는 시민의 발길이 잦았다. 인근 예원학교와 이화여자여고 학생들의 통학길이기도 하다. 정동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기도 해 더 자주 쓰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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