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47634387 0532018091447634387 07 0701001 5.18.13-RELEASE 53 노컷뉴스 0

[노컷스토리] 트레이싱 논란 입 연 김성모 "모든 것은 제 책임"

글자크기

웹툰 고교생활기록부 트레이싱 논란 이후 첫 인터뷰

"독자분들께 있는 그대로 설명해 드리는 게 도리"

"제대로 된 작품으로 다시 시작하겠다"

CBS노컷뉴스 박기묵 기자

김성모 작가 인터뷰를 잡은 것은 트레이싱 논란 전이다.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한 웹툰 '고교생활기록부'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트레이싱 논란이 터졌다. 김 작가는 "제가 지금 지방입니다. 당분간 지방에 있을 예정입니다"는 문자 메시지와 "올라가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는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취소했다.

한 달 뒤 9월, 김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기자님 김성모 작가입니다. 이제야 정비가 좀 된 것 같네요"

노컷뉴스

'트레이싱' 논란이 인 웹툰 ‘고교생활기록부’ 만화가 김성모 씨가 10일 오후 경기도 부천 자신의 화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9월 10일 부천 화실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트레이싱 논란 이후 첫 언론 인터뷰였다. 널찍한 화실에는 직원 한 명만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지 묻는 그는 양해를 구하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다소 지쳐있고 초췌한 느낌의 그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불은 금방 꺼졌다. 재떨이에 꽁초 한 개가 들어갔다.

김 작가는 세 시간 동안 지난 몇 달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럭키짱에서 평점 1점을 주던 독자분도 칭찬해줬죠. 신났습니다. 더 열심히 하려고 잠도 안 잤어요, 저도, 화실 사람들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김 작가는 고교생활기록부가 연재되고 7월 한 달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압도적인 분량과 달라진 그림체. 지난해 연재를 끝낸 '돌아온 럭키짱'과 180도 달라진 모습에 독자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유의 '강건마'라는 주인공이 있었지만 럭키짱 때와 그림, 스토리, 구성이 달랐다. '초심을 잃어서 다행인 작가'란 칭찬 아닌 칭찬까지 쏟아졌다. 고교생활기록부는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순위권으로 올라갔다.

럭키짱으로 고통받던 김 작가의 인지도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부끄럽지만 럭키짱 때는 웹툰을 너무 쉽게 봤습니다. 다른 작품을 한다고 전력을 다하지도 못했죠. 그렇게 어영부영 6년을 연재하니 어느 순간 제가 10~20대에게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대로 된 작품을 보여줘야겠다'고 말이죠"

노컷뉴스

'트레이싱' 논란이 인 웹툰 ‘고교생활기록부’ 만화가 김성모 씨가 10일 오후 경기도 부천 자신의 화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는 이번 트레이싱 논란의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웹툰 돌아온 럭키짱 이야기가 나오자 김 작가는 고개를 숙였다.

김 작가에게 웹툰 럭키짱은 새옹지마 같은 작품이다.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됐지만 적어도 10~20대에게 김성모라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93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약속'으로 데뷔한 김 작가는 '마계대전', '럭키짱' 코믹북에 이어 2000년대 '용주골', '대털', '강안남자' 등 성인 만화로 성공을 이어갔다.

비판도 많았다. 막대한 화실 인원으로 만화를 찍어내 듯 출간하다보니 '만화 공장'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같은 장면을 자신의 다른 작품에 여러 번 사용한 사례도 있다.

2012년 네이버 웹툰 '돌아온 럭키짱'을 시작했지만 다른 작품을 핑계로 만화를 신경 쓰지 못했다. 6년이란 시간은 흘렀고 젊은 세대에게 김 작가는 형편없는 웹툰을 그리는 사람으로 굳어졌다.

"새롭게 가려고 노력을 참 많이 했습니다. 현재 웹툰 대부분이 100컷이 안 되지만 고교생활기록부는 140컷 정도 됩니다. 1화는 200컷까지 되죠. 일단 양을 압도적으로 늘려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주려고 했습니다. 10대들이 쓰는 말도 공부하고 스토리, 문체, 폰트, 내용,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너무 많이 바꾸다가 그 사건(트레이싱)이 발생했죠"

말을 잇던 김 작가가 연거푸 담배를 피웠다.

노컷뉴스

'트레이싱' 논란이 인 웹툰 ‘고교생활기록부’ 만화가 김성모 씨가 10일 오후 경기도 부천 자신의 화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작가의 작품은 혼자서 모든 것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다. 작가가 기획, 스토리, 캐릭터를 잡아 아대(기본 스케치 그림)를 떠주면 ▶ 데생 및 펜터치 ▶ 컬러 및 스케치업 ▶ 배경 및 스크롤작업 순서로 작업하는 구조다. 영화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작품을 지휘하면서 스텝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방식과 비슷하다.

문제가 된 트레이싱 컷은 데생 단계에서 터졌다. 김 작가는 캐릭터를 잡아 데생으로 넘겼는데 데생 쪽에서 김 작가 캐릭터를 잡은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그림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청출어람이라고 하잖아요. 데생하는 친구는 저와 20년을 함께한 혈맹이에요. 그 친구가 제가 그린 아대 그림보다 저보다 더 좋은 데생 그림을 주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 친구에게 '야, 나보다 네가 더 낫다'는 말을 하며 그림을 채택했습니다. 제 그림을 버렸죠. 그렇게 넘어온 컷에 트레이싱이 있었던 거죠"

김 작가는 다시 담배를 물었다.

김 작기는 트레이싱 논란 이후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거나 패배의식에 빠져있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모든 작업이 멈춘 이 화실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란 것을 알기에 더 책임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담배는 늘었다. 평소 두 갑이면 충분했지만 최근 4갑 가깝게 태운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었습니다. 제가 화실 식구들에게 너무 많은 작업량을 주문하면서 새로운 것을 원했던 거죠. 트레이싱도 못 찾아냈고요. 사실 데생 작업을 하는 그 친구는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에 트레이싱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분량과 새로운 요구 압박 때문이었죠. 저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비슷할 수 있는데 저는 사람들이 그걸 가지고 이야기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도 그렇게 글을 올렸죠. 트레이싱은 단 1%도 생각하지 않았죠. 전 싸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대로 가져다 베낀 증거 자료가 올라왔습니다. 뭐라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이건 그냥 갖다 쓴 거예요. 트레이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컷뉴스

김성모 씨가 10일 오후 경기도 부천 자신의 사무실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웹툰 고교생활기록부가 일본 타케히코 이노우의 유명 만화 '슬램덩크'를 트레이싱했다는 인터넷 기사가 쏟아졌다. 커뮤니티에는 김 작가의 트레이싱 흔적을 찾은 글로 도배됐다.

모리타 마사노리의 '로쿠데나시 블루스'와 비슷한 장면도 공개됐다. 언론에 보도된 사진 속 학생들을 따온 장면에서부터 단행본 시절 작품에서 비슷한 장면을 자신의 다른 작품에 사용한 내용까지 있었다. 웹툰 럭키짱 연재 시절 불성실한 작가 이미지도 한몫했다. '어느덧 손에 익어서 비슷한 지적이 많았다'는 페이스북 해명은 '독'이 되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초심을 찾았네'

김 작가를 칭찬하던 독자가 다시 등을 돌렸다. 새 작품으로 인기 정점을 달리던 작가가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23년 차 작가 김성모는 만화계의 '쓰레기'가 됐다.

노컷뉴스

네티즌들이 지적한 고교생활기록부(좌)의 슬램덩크(우) 트레이싱 컷.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날 밤 데생을 담당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김 작가에게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김 작가도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김 작가는 "마음대로 해"란 말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밤늦은 시간, 동료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다음 날 아침 소식을 들은 김 작가는 바로 동료가 살고 있는 지방으로 향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트레이싱 뉴스 기사는 볼 틈도 없었다. 네이버는 고교생활기록부 연재 및 서비스를 중단했다.

"내려가서 동료를 진정시켰습니다.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였거든요. 만화 그따위에 목숨 끊을 필요 없다고. 모든 것은 작가인 내 책임이 맞고 넌 잘못이 없다고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작품으로 망가진 만큼 다시 작품으로 올라갈 거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늘 첫 인터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모두가 말리더군요. 기자는 믿을 게 못 된다고(웃음)"

김 작가는 인터뷰 내 조심스러웠다. 그는 이번 트레이싱 논란을 동료에게 전가하는 것을 우려했다. 페이스북 해명 때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고민도 했다. 서울에 오면 기자와 인터뷰하기로 한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했지만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김 작가는 이유를 막론하고 이번 트레이싱 논란의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거듭 밝혔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어떤 변명도 없었다.

고교생활기록부 트레이싱은 작가 김성모의 잘못이 맞다.

노컷뉴스

웹툰 고교생활기록부의 작업 과정. 김성모 작가는 2번에서 3번으로 넘어가는 데생 펜터치 과정에서 트레이싱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사진=김성모 작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고교생활기록부를 시작하면서 다른 작품 연재는 모두 끊었다.

인터넷에서는 김 작가가 트레이싱 논란 이후에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왔지만 그는 아무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현재 김 작가의 화실은 멈춰 있다. 스무 명가량 되는 화실 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김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다.

언제쯤 다시 작품을 볼 수 있을지 물었다.

"그건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작품을 준비하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독자들의 심판을 받겠죠. 작품으로 망가진 만큼 작품을 다시 내고 작품으로 다시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결정되지 않을까요?"

김 작가의 화실에는 작은 침대가 놓여 있다. 김 작가는 오늘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작업을 한다. 집에 들어가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화실에서 작업한다. 20년간 해온 작업 방식이다.

특유의 근성이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

노컷뉴스

김성모 작가가 그려 놓은 고교생활기록부 기획안. 김 작가는 현재 고교생활기록부 작품을 새로 뜯어 고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박기묵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화실 여기저기에 원고가 쌓여 있었다.

고교생활기록부 후속 원고도 함께 있었다. 김 작가는 현재 고교생활기록부를 전면 수정하고 있다. 캐릭터도 다시 뜯어고쳤다. 오랜 준비를 했던 만큼 꼭 한번 재도전하고 싶다는 입장이다. 새 작품도 구상하고 있다.

김 작가의 손에서 마지막 담배불이 꺼졌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였다.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