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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Science] 인공태양의 꿈…1초 태양에너지, 인류 100만년 쓰고 남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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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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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진보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공상과학(SF) 소설 거장 아서 클라크는 1961년 자신의 저서 '클라크의 삼법칙'에서 이 같은 말을 남겼다. 과거에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혹은 마법으로 알았던 현상이 인류가 미처 몰랐던 과학적 현상이자 과학적 지식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료 1g으로 석유 8t 분량의 에너지를 생산하고, 원자력발전과 비교해도 주입하는 연료 대비 4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온실가스 배출 걱정이 전혀 없으며 사용후핵연료 보관과 같은 골치 아픈 환경 문제도 없는 에너지원. 여기까지 들으면 '과학'보다는 '마법'에 가깝다고 느껴지겠지만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 얘기다. 태양을 모방해 태양이 내뿜는 것과 같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핵융합발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태양의 무한한 에너지는 상상 이상이다. 태양이 1초 동안 뿜어내는 에너지는 지구의 모든 인류가 100만년을 쓰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하다. 그리고 이 같은 태양에너지의 원천이 바로 핵융합이다. 태양 내부에서 수소 원자 두 개가 결합하는 핵융합으로 헬륨 원자가 만들어지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에너지가 우주 공간으로 끊임없이 방출되고 있다. 원자를 구성하는 핵은 양성(+)을 띤다. 따라서 원자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려면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 밀어내는 것과 같은 '척력'이 작용한다. 이처럼 원자가 원자를 서로 밀어내는 척력을 무력화시키는 게 태양이 갖고 있는 1500만도의 뜨거운 온도와 엄청난 중력에서 발생하는 2000억기압에 달하는 압력이다.

과학자들은 무한한 태양에너지를 창출하는 근원인 핵융합반응을 지구에서도 구현시킨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핵융합 때 발생하는 열로 증기를 만들어 터빈을 돌리면 전기에너지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양과 같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문제였다. 약 1500만도의 열은 만들 수 있지만 2000억기압에 달하는 압력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결국 압력은 포기하고 '온도'를 택했다. 태양의 압력은 못 만들더라도 끊임없이 온도를 높여 태양보다 높은 온도에서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압력의 도움 없이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려면 태양 표면 온도의 10배에 달하는 1억5000만도에 달하는 열이 필요했다. 이처럼 자연에서 존재할 수 없는 뜨거운 열을 발생시키기 위해 과학자들은 진공관 안에 수소를 채운 뒤 열을 가해 원자가 전자와 이온으로 분리되는 제4의 상태인 플라스마로 만들었다. 이 플라스마에 전자기파나 고에너지를 갖고 있는 중성자 빔을 쏴주면 온도는 1억도 이상 거뜬히 올라갈 수 있다.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1억5000만도까지 온도를 올리는 방법은 찾아냈지만 이 같은 온도를 견디는 벽체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열이 벽에 닿으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플라스마를 벽에 닿게 하면 안 된다고? 그럼 플라스마와 벽체 사이를 띄우면 되잖아."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도넛 형태의 '토카막'이라 불리는 구조물이다. 옛 소련 과학자들이 고안한 이 토카막은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스마를 공중에 띄울 수 있다. 플라스마는 자기장을 따라 움직이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토카막 내부 벽을 '초전도 자석'으로 만들었다. 초전도 자석은 영하 260도에 가까운 낮은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체에 전류를 흘려 자기장을 만드는 장치다. 저항이 없어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되기 때문에 플라스마를 공중에 띄울 수 있다.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물질인 플라스마를 지구에서 가장 차갑게 설계된 그릇에 담는 셈이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또 다른 불가능의 벽을 넘어섰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문제가 과학자들을 다시 번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플라스마의 움직임이었다. 윤시우 국가핵융합연구소 KSTAR연구센터장은 "뜨거운 플라스마가 토카막 주변에 닿지 않은 채 유지돼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토카막형 플라스마 경계면의 미세한 압력 변화 때문에 플라스마가 안정적으로 자기장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요동치는 '플라스마 경계면 불안정 모드(ELM)'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ELM이 발생하면 고온의 플라스마가 토카막 벽을 때려 경계면이 파손되고 훼손돼 플라스마가 새어나가 효율이 떨어진다. 한국의 핵융합실험로인 KSTAR를 비롯해 각국에 있는 과학자들이 '플라스마 50초 유지 성공' '70초 유지 성공'과 같은 발표를 하는 이유다. 아직 인류는 플라스마를 100초 정도만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24시간 발전이 가능하려면 고온의 플라스마를 1000초, 약 16분 가까이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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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R 핵융합로 건설현장. [사진 제공 = ITER]


한국을 비롯해 핵융합실험로를 운영하는 많은 나라의 과학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날뛰는 플라스마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한 다양한 예측 모델을 내놓고 있다. 최근 미국 프린스턴 플라스마연구소와 국가핵융합연구소는 플라스마 움직임을 예측하는 이론을 개발하고, 이를 한국의 핵융합실험로인 KSTAR에서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 최신호에 게재됐다. 윤 센터장은 "플라스마 ELM 예측 모델을 개발했다는 연구 결과는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면서도 "이번 연구 성과는 이론적으로 만든 모델이 실제 실험 결과 상당히 잘 구현됨을 확인했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윤 센터장은 "KSTAR가 핵융합의 난제인 ELM 해결을 위한 검증된 예측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향후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나 핵융합실증로에서의 ELM 제어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ITER는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유럽연합(EU) 등이 함께 기술력을 총동원해 만드는 대규모 핵융합실험로다. 핵융합 구현이 기술적으로 워낙 어렵다 보니 7개국 과학자들이 힘을 합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현재 프랑스 카다라슈 지역에 축구장 60개 크기의 핵융합실험로를 건설하고 있는데 건설비용만 20조원에 달한다. 현재 공정률은 55%를 넘어섰다. 2025년 완공되면 높이 30m, 폭 30m 규모의 공간에 설치된 토카막에 플라스마를 띄우게 된다. 토카막 주변을 감싸는 초전도체 성능은 수영장 100개의 물을 동시에 얼릴 수 있을 정도다. 윤 센터장은 "플라스마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찾는 일은 상당히 힘들다"며 "이번에 예측한 모델을 토대로 ITER에 적용하면 보다 빨리 안정적인 플라스마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ITER에서 얻은 지식은 건설에 참여한 국가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ITER에서 진행한 실험을 토대로 실제 발전까지 가능한 '핵융합실증로' 건설에 나설 계획이다. ITER에서 핵융합로의 성능이 입증되면 2040년 이후 전 세계에서 핵융합을 이용한 발전소 건설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 상온 핵융합 들어보셨나요
현 과학으론 구현 어려워…'쿨 플라스마'투자 사기도

"쿨 플라스마(Cool Plasma)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뷰 요청 드립니다."

지난해 말 우즈베키스탄의 핵물리학자라는 사람이 회사로 연락을 해왔다. 두 귀를 의심했다. '쿨 플라스마'라는 이름을 쓰기는 했지만 쉽게 말해 '상온핵융합'을 뜻했다. 태양에서 발생하는 핵융합을 구현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1억도가 넘는 플라스마를 가두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상온핵융합이라니! 실현만 된다면 아이언맨 가슴에 붙어 있는 '아크 원자로' 구현이 가능해질 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설국열차'를 현실에서 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사 과학' '사이비 과학'이었다. 지난해 국정감사 결과 한 기관이 이 과학자에게 속아 실제로 투자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쿨 플라스마를 만들겠다던 기관의 연구원들은 모두 퇴사했다. 괜한 돈만 날린 셈이다. 핵융합 에너지가 워낙 매력적이다보니 이를 활용해 사욕을 추구하려는 사람도 꽤 많다. 특히 일부 기업은 '핵융합 발전 성공' '플라스마 전기 생산' 등의 용어를 쓰며 마치 핵융합 발전에 성공한 것처럼 호도하기도 한다. 과학기술계는 "상온핵융합이나 핵융합으로 수년 내 청정에너지 생산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상온핵융합의 역사는 길다. 1989년 미국 유타대의 스탠리 폰스 교수와 사우샘프턴대 마틴 플라이슈먼 교수는 '팔라듐' 전극을 이용해 중수를 전기분해하던 중 많은 양의 열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열이 핵융합 반응에 의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영화 아이언맨을 보면 토니 스타크도 핵융합 반응을 위해 '팔라듐'을 사용하는것으로 나온다. 폰스 교수의 실험은 미국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당시 한국 대학에 있던 일부 교수도 이 실험을 재현했더니 핵융합 반응이 나타났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 역시 뒤질세라 상온핵융합 성공을 발표했다. 하지만 폰스 교수의 실험은 확인 결과 핵융합 반응이 아니었다. 결국 상온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던 두 교수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2004년 미국 에너지부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1989년에 있었던 실험은 실패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상온핵융합에 대한 개별적인 지원은 필요하다고 봤다. 과학기술계는 상온핵융합이 현실 이론과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 타임지는 1999년 6월 14일자에 지난 세기에 가장 나빴던 아이디어 100가지 중 하나로 상온핵융합을 선정하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 인도 등 여러 나라 역시 과거 상온핵융합 연구에 대한 지원을 했지만 현재는 포기했다. 2014년 국가핵융합연구소가 발간한 '상온핵융합 동향'에 따르면 상온핵융합과 관련된 논문은 500여 편이 나왔다. 실험 보고서는 1370여 개가 발표됐지만 저명 저널에 발표되지는 않았다. 미국 특허청은 현재 상온핵융합을 주장하는 모든 특허 신청을 기각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온에서 핵융합을 구현하려는 일부 과학자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연구 다양성을 위해서도 일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2006년부터 미국 물리학회는 반년마다 열리는 모임에 상온핵융합 세션을 포함시켰고 미국 화학회도 상온핵융합에 관한 '초청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과학기술계는 상온핵융합을 위한 기초연구는 충분히 도전할 수 있지만 마치 수년 내 기술이 현실화될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은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돈'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윤시우 국가핵융합연구소 KSTAR연구센터장은 "상온핵융합은 현재 재현이 잘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물리학계에서는 구현이 어렵다고 본다"며 "그럴듯한 말로 속이려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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