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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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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문영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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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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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해 재화를 생산하는 경제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착취의 대상일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기 위해서는 붉은색이 덧칠해질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붉은색은 질서를 어지럽히고 불안을 조성하는 세력의 색이다.

심지어 북한과 연계해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극도로 위험하고 불온한 계층의 색깔이다. 그래서 두려움의 대상이자 배척과 탄압의 대상이다.

일하는 곳이 너무 열악하고 일한만큼 대가를 달라고 모여 외치면, 주장의 정당성에 상관없이 붉은색이 칠해진다.

권력이 그렇게 판단하면 언론이 나서 도와줬고 여론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탄압의 근거가 만들어지면, 공권력은 신속하고 강력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쫒아냈다.

재벌에게 특혜처럼 내려졌던 각종 사업권은 부실한 경영을 불러오기 일쑤였다. 쌍용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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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 잠정 합의안이 발표된 14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분향소에서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해고자 복직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합의문을 올리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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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경영으로 중국에 팔리고 금융위기까지 찾아오자 노동자 2천6백명이 감원대상에 올랐다. 전체의 36%다.

노조의 와해와 정리해고를 위해 청와대와 경찰, 자치단체, 회사간에 치밀한 계획이 세워졌다.

대부분이 정부와 회사측의 의도대로 회사를 떠났지만, 이 가운데 165명은 무급휴직까지 거부하다 결국 해고됐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9년 만에 쌍용자동차 해고자 119명이 전원 복직된다.

하지만 흐른 세월만큼 희생과 상처가 너무 컸다. 그사이 서른 명이 세상을 등졌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까지 덧씌운 가혹한 대응과 사회의 싸늘한 시선이 만들어 낸 간접살인이다.

9년만에 이뤄진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은 반갑지만 무겁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편견과 적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전직 대통령을 옹호하는 세력들은 건재하고 굳건하다. 이들에게는 해고노동자들만 붉은색이 아니다.

국가의 안일한 대응으로 자식을 잃은 세월호의 부모도 붉은색이고, 촛불을 들었던 수백만의 시민들도 이들에게는 붉은색의 불온세력이다.

강고한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과거의 집권세력도 있다. 정치권뿐 아니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판결을 해주고 원하는 바를 얻으려 했던 사법부의 민낯도 드러나고 있다.

9년 만에 이뤄진 쌍용차 해고자의 복직이 이념의 색이 일렁이고, 그것을 이용해 권력을 이어가려는 뿌리 깊은 세력이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 작은 파문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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