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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슈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취재파일] 드루킹 특검은 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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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가 아닌 '드루킹 입'만 쳐다본 특검

"저희는 인적 증거와 물적 증거 등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수사를 진행할 것입니다."

드루킹 특검팀의 수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지난 6월 27일, 허익범 특별검사가 밝힌 말이다. 당시 특검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검·경이 부실 수사를 했다고 직·간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60일 간의 수사 기간이 지난 지금, 특검에 대한 평가는 비판 일색이다.

● '증거'가 아닌 '드루킹의 입'만 쳐다본 특검

"드루킹의 입만 쳐다보며 수사의 주도권을 놓친 결과다."

특수 수사 경험이 많은 한 현직 검사가 '빈 손'으로 끝났다고 평가를 받는 특검에 대해 내놓은 촌평이다. 수사 대상자인 드루킹과 그 일당의 입에 의존한 결과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특검이 말한 증거는 당연히 '물적 증거'에 방점이 찍혀 있을 것으로 이해됐지만, '인적 증거' 즉 드루킹 일당의 진술에 의존하다 보니 그 진술이 흔들릴 때마다 수사가 요동쳤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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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직 검사의 분석이다. "피의자 특히 본인이 뭔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피의자의 경우, 수사의 방향이 본인의 입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제대로 된 진술도, 제대로 된 수사도 이뤄지기 힘들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주 같은 드루킹이 사회적으로 주목 받을수록, 자신이 수사 대상자가 아니라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라고 생각하게 될수록 제대로 된 수사와는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이 검사의 분석대로라면 특검의 수사 극초기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 공식 수사 이틀째인 지난 6월 28일, 특검은 구속 수감 중이던 드루킹 김 모씨를 소환했다. 그런데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허익범 특별검사가 드루킹 김 모씨를 별도로 면담한 것이다. 당시 허익범 특별검사는 드루킹에게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의 총 책임자가 수사 대상자과 별도로 면담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수사에 효과적이지도 않다. 전직 대통령들이 검찰이 소환됐을 때도 간단한 면담, 간담한 티타임은 검사장이 아닌 실무를 담당하는 차장검사 등이 진행했다. 그나마 그것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다. 그런데 드루킹을 특별검사가 직접 면담한 이유는 뭘까. 그 자리에서 드루킹은 '수사에 잘 협조해야 되겠구나'라며 마음을 다 잡았을까, 아니면 특검 수사는 '내 입에 달렸구나'라며 어깨를 으쓱했을까.

● '드루킹 일당'의 진술에 따라 요동친 특검 수사

'드루킹의 입'에 특검이 의존하면서 특검 수사의 성패를 결정하게 된 것도 '드루킹의 입'이었다. 특검이 빈손으로 활동을 종료했다고 평가받는 핵심적인 근거는 김경수 경남지사 신병 확보 실패다. 구속과 불구속은 수사의 한 방법이고,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그것이 무죄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특검으로선 뼈아픈 대목이었다.

법원은 김경수 지사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공모 관계의 성립 여부 및 범행 가담 정도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검은 김 지사가 드루킹과 댓글 조작을 공모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소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댓글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회와 그 이후의 정황에 대한 드루킹의 진술이 특검 조사 과정과 김 지사의 대질 심문 과정에서 일부 번복된 것이 구속영장 기각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드루킹 측 진술에만 매달렸다가 진술이 번복되자 수사의 그림과 스케줄이 무너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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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특검의 수사 그림을 그린 것도 드루킹이었다. 특검은 어제(27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김경수 지사가 "드루킹 일당의 킹크랩 시연을 보고 킹크랩 개발과 운용을 허락하는 등 댓글 조작을 공모했고, 지방선거 도움을 대가로 일본 총영사직을 제안하는 등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킹크랩 시연 참관과 개발 허락, 일본 총영사직 제안은 드루킹이 소위 '옥중편지'에서 주장했던 내용 그대로다. 김 지사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주장과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 측이 드루킹 측 주장을 신뢰한다면, 그 진술의 신빙성을 강화할 증거를 충분히 제시했어야 했다. 직접 증거가 없다면 정황 증거라도 충분했어야 했다. 진실은 다수결이 아닌 만큼, 여러 명의 드루킹 일당이 동일한 진술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사실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드루킹 측 진술은 드루킹을 정점으로 한 경제적공진화모임이라는 의문스런 조직의 구성원들의 진술로서, 다수가 진술한다고 해도 그 진술이 신빙성을 공격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특검 측은 드루킹 일당의 진술 이외에는 특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 한 걸로 전해진다. 객관적 증거라고 제시한 인터넷 로그 기록도 드루킹 측 진술의 신빙성을 입증한 결정적 증거는 되지 못 했다.

● 무시된 녹취 파일…수사팀의 확증편향

수사를 할 때 '확증편향'을 경계해야 한다는 건 불문율이다. 특정 사안, 특정 진술에 꽂혀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수사팀이 그리는 혐의의 구도에서 벗어나거나 반대되는 증거나 진술도 유심히 살펴서 그것이 전체 그림을 망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쉽게 이야기하면, 꽂히면 오버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는 것이다.

킹크랩 시연회가 있었다는 2016년 11월 9일, 김경수 지사가 드루킹 측에 격려비로 100만원을 줬다는 의혹은 김 지사와 드루킹의 관계, 김 지사의 킹크랩 시연회 참관을 의심하는 주요 근거로 활용됐다. 드루킹 측이 정치인에게 받았다는 돈은 이 100만 원이 유일했고, 김 지사가 격려비로 돈을 줬다는 건 킹크랩 시연을 보고 흡족해 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드루킹의 한 측근은 경찰 조사에서 100만 원을 받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특검은 이 의혹과 관련한 녹취파일은 수사 초기 확보했다. 경찰로부터 인계받은 해당 녹취파일에는 드루킹이 핵심 측근에게 "김 지사가 오사카 총영사직을 안 받아줘서 화가 나니 매달 100만 원씩 받았다고 하자"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특검 '드루킹 거짓말' 알고 있었다…22일 연장 여부 발표) 100만 원 의혹과 관련해서 드루킹 일당이 허위 진술을 공모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과 함께 드루킹 측이 일본 오사카 총영사직을 김 지사에게 먼저 요구한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지사가 먼저 오사카 총영사를 제안했다면 "안 받아줘서 화가 난다"는 취지로 말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검은 김경수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김 지사가 '오사카 총영사와 센다이 총영사를 제안했다'고 적시했다. 녹취파일의 내용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힘든 결과다. 시기별 특검의 주장도 쉽게 납득이 어렵다. 한 언론사가 김경수 지사 관사 등에 대한 특검의 압수수색 영장에 '오사카 총영사를 김 지사가 먼저 제안했다'는 내용이 적시됐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센다이 총영사직'을 김 지사가 먼저 제안했다는 내용만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후 청구한 구속영장에는 '오사카 총영사'도 김 지사가 제안한 걸로 되어 있는데, 어제 특검이 설명한 김 지사에 대한 공소사실에는 '오사카 총영사'는 다시 빠졌다. 일관성 없이 널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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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의 이런 모습에 대해 검사 출신 변호사는 "시기별 특검의 논리에 따라서 드루킹의 진술을 취사선택했고, 드루킹의 진술이 바뀌면서 김 지사에 대한 범죄 사실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특검이 시기별로 그린 그림에 맞는 진술만 취사선택하고, 반대 증거나 진술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확증편향의 결과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경위야 어찌 됐든, 특검 측이 짐짓 무시한 걸로 보이는 드루킹의 녹취 파일은 김 지사의 영장심사에서 쟁점이 됐고, 법원이 드루킹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드루킹 진술에 기댄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주요 이유가 된 걸로 알려진다.

●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지만…

물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영장 기각은 과정일 뿐이고, 아직 재판이 남았다. 영장 단계에서 충분히 소명되지 못 했던 김 지사의 댓글조작 공모 혐의가 재판 과정에서 입증될 수도 있고, 구속영장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재판에선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특검 측 주장대로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충분히 수사가 되었기 때문에 특검이 수사 기간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특검이 지금껏 보인 모습은 향후 재판 과정에서도 두고두고 특검 측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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