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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IF] 거미줄로 총알 막는 스파이더맨, 곧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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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독일 암실크의 인공 거미줄로 만든 아디다스의 운동화. /아디다스




만화책에 나오는 스파이더맨은 날아오는 총탄도 거미줄을 쏘아 붙잡는다. 만화가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바이오기업 크레이그 바이오크래프트는 지난 20일 미 육군의 신형 방탄복 시험을 위해 인공 거미줄로 만든 직물을 납품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인공 거미줄은 기존 방탄복 소재인 케블라보다 강하면서도 훨씬 유연해 속옷 형태의 방탄복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미줄이 일상생활로 들어오고 있다. 가벼우면서 강하다는 장점을 활용해 보호 장구나 신발, 의류에 적용되고 있으며, 인체에 해가 없어 화장품이나 의료기기에도 이용되는 일이 늘고 있다. 업체들은 키우기 힘든 거미 대신 누에나 대장균, 효모 등에서 인공 거미줄을 대량생산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의류 이어 화장품·의료기기에도 적용

거미줄은 강철보다 5배나 강하고 원래 길이보다 4배나 늘어날 정도로 유연하다. 밧줄로 만든다면 비행기를 끌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크레이그사는 미국 육군이 지난 5월 1차 시험에서 인공 거미줄 방탄복을 계속 개발해도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회사는 앞으로 연간 15만t의 인공 거미줄 생산 능력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거미줄의 활용도는 다양하다. 2016년 독일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는 바이오업체 암실크가 만든 인공 거미줄로 신발을 만들었다. 거미줄 신발은 합성 섬유로 만든 제품보다 15%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 미국 의류업체 노스페이스는 일본 스파이버사의 거미줄로 만든 파카 시제품을 공개했다. 미국 볼트 트레드도 거미줄로 의류를 개발하고 있다. 거미줄 옷은 기존 실크 제품보다 강도가 높아 세탁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회사는 밝혔다.

거미줄 단백질은 생체 물질이라 인체에 해가 없다. 이 점을 이용해 몸에도 거미줄이 적용되고 있다. 독일 암실크는 거미줄로 콜라겐을 보충하는 피부 화장품을 만들었다. 거미 단백질을 분말로 만들어 로션과 마스크팩 등에 첨가했다. 암실크는 거미줄 단백질이 보습을 유지하면서도 피부 호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거미줄로 이식용 세포를 배양하는 연구도 이뤄졌다. 독일 바이로이트대 연구진은 거미줄로 그물망을 만들고 그 위에 심장 세포를 붙여 이식용 조직을 배양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인슐린 분비 세포도 같은 방법으로 배양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누에고치에서 거미줄 뽑아내

거미줄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대량생산이다. 거미를 한데 모아 키우면 서로 잡아먹기 때문이다. 크레이그사는 거미 대신 비단을 만드는 누에나방 애벌레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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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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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거미 몸에서 거미줄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추출한 다음, 누에의 유전자에 삽입했다. 다음에는 기존 방법대로 뽕나무 잎을 주면서 누에를 키우면 된다. 나중에 누에가 만든 고치를 풀면 거미줄을 얻을 수 있다. 크레이그사는 "기존 비단 생산 공정에 그대로 적용해 인공 거미줄을 ㎏당 300달러에 생산할 수 있다"며 "경쟁사보다 50~100배 저렴한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거미줄 대량생산을 위해 베트남에 대규모 누에 농장을 확보했다.

다른 회사들도 거미 유전자를 다양한 생물에 집어넣었다. 볼트 트레드는 빵이나 맥주 발효에 쓰는 효모를 이용했으며, 스파이버와 암실크는 대장균에 거미줄 유전자를 넣었다. 국내에서는 이상엽 KAIST 특훈교수가 대장균의 유전자를 거미줄 생산에 최적인 형태로 변형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 교수는 "거미줄 단백질은 다른 단백질보다 워낙 커서 대장균 유전자를 이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담뱃잎이나 염소젖을 통해 거미줄 단백질을 얻는 연구도 진행됐다.

대장균이나 효모가 생산한 인공 거미줄 단백질로 거미줄을 뽑아내는 공정도 새로 개발됐다. 지난해 초 스웨덴·중국·스페인 공동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거미의 신체 기관을 모방한 장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거미는 몸 안에서 여러 가지 단백질을 섞어 액체 상태의 거미줄을 만든다. 이 용액이 방적관을 지나 꽁무니로 뿜어져 나오면서 실 형태로 바뀐다. 연구진은 이때 방적관 내부의 산도(酸度)가 점점 낮아져 산성으로 바뀌는 데 주목했다. 방적관을 모방해 좁은 유리관을 만들고 내부 산도를 7.5에서 5.5로 바꾸자 거미줄 단백질이 실 형태로 만들어졌다. 연구진은 대장균 배양액 1L 속의 단백질로 인공 거미줄 1㎞를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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