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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세계 최초 5G 시장 잡아라” 장비업체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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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노키아·에릭슨·화웨이 10조 각축전

세계 1위 화웨이 ‘보안 문제’ 지적하다가

최근엔 ‘누가 한국과 가깝냐’로 바뀌어

국내 채용 및 중소기업과 상생 강조

역시 타깃은 국내 투자 소극적인 화웨이

내년 3월 세계 최초 5세대 이동통신(5G) 상용화를 앞두고 글로벌 이동통신 장비업체들이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5G 네트워크 장비 선정은 이르면 다음 달 이뤄진다.

이통 장비업체인 에릭슨LG는 21일 서울 가산동 5G 연구개발(R&D)센터에서 오픈하우스 행사를 열었다. 이 회사 R&D센터는 1985년 경기도 안양에 국내 첫 민간연구소(당시 금성통신연구소)로 문을 열었는데, 33년 만인 올해 2월 가산디지털단지로 이전한 것을 언론에 공개하는 자리였다. 장비업체로는 화웨이(6월 중국 상하이 모바일월드콩그레스)·삼성전자(7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이어 세 번째 미디어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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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산동에 있는 에릭슨LG 연구개발센터에서 연구원들이 5세대 이동통신 개발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에릭슨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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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5G 장비를 놓고 이 세 회사에 노키아를 더해 빅4 업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는 5G 인프라를 갖추는데 앞으로 5년 내 10조원대 투자를 집행할 방침이다. 초도 물량만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전성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국장은 “기존 4G(LTE·15조~17조원) 때보다 더욱 촘촘하게 망(網)을 깔아야 해 (이통사들의) 투자 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장비업체로서는 그만큼 ‘큰 장’이 선다는 뜻이 된다. 가령 국내 3위권으로 평가받는 에릭슨LG는 연 3000억원 안팎이던 매출이 2011년 4G 투자 당시 1조3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인 만큼 테스트베드(시험대) 역할까지 한다. 글로벌 장비업체들이 국내 5G 투자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국내 이통 장비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45%)-노키아(25%)-에릭슨(18%)-화웨이(12%) 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삼성은 세계 시장에서는 3%대 점유율에 불과하지만 ‘안방’에서는 단연 맹주다. 화웨이는 4G 때부터 LG유플러스의 서울·경기권에 장비를 공급했다. 통상 이통 업체들은 망 안정성·운용 효율성 등을 따져 장비업체 3~4곳을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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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장비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보안’이었다. 가격·품질 모두 경쟁력을 갖춘 세계 1위 화웨이를 견제하는 카드이기도 했다. 화웨이는 2010년대 초부터 매출의 15%를 R&D에 쏟아붓는 과감한 투자,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세계 통신장비 시장을 ‘점령’했다. 점유율이 28%다.

화웨이가 국내 시장에서 고삐를 죄자 경쟁 업체들은 “미국·호주·영국 등에서 (화웨이가) 보안 위협 때문에 사업 참여에서 배제됐다”고 공세를 펼쳤다. 김영기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장(사장)이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플랫폼에서 일어날 많은 서비스를 생각한다면 안정적인 시큐리티(보안)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화웨이는 이럴 때마다 “전 세계 170여 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보안 사고가 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맞섰다.

1라운드가 보안 이슈였다면, 2라운드는 ‘누가 한국과 더 가까운가’다. 이날 에릭슨LG는 ‘한국과 동행’을 유독 강조했다. 이 회사 패트릭 요한슨 최고경영자(CEO)는 “임직원 900여 명 중 4명만 외국인이다. 연 매출 3000억원 중 1000억원 이상을 R&D에 투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영준 에릭슨LG 연구소장은 “글로벌 R&D 인력 2만6000여 명 중 국내 R&D 인력 500여 명이 핵심인력”이라며 “이들이 10년 가까이 준비해 온 5G 솔루션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개방형 공급 구조를 통해 국내 중견·중소기업과 협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데이터 부문(DU)과 무선 기지국(RU) 간 전송 프로토콜인 무선공공인터페이스(CPRI) 기술을 개방해 중소기업이 개발한 RU를 직접 통신사에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협력업체가 통신사에 공급한 부품과 장비·소프트웨어가 2300억원 규모라는 설명이다.

노키아는 KMW·에치에프알·사이버텔브릿지·텔코웨어 등 국내 업체와 상생협력 사례를 별도 자료로 만들어 제시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 회사 박정훈 상무는 “주요 장비·부품을 기술력 있는 현지 기업과 공동 개발해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게 글로벌 본사의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슈는 바뀌었지만 이번에도 화살은 ‘같은 타깃’을 겨냥한다. 화웨이가 한국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에둘러 지적하는 것이다. 화웨이는 해외에 9곳의 R&D센터를 운영 중인데 한국엔 없다. 제품 생산은 대부분 중국에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비난을 의식해 멍사오윈(孟少雲) 한국화웨이 대표가 “한국의 중소기업들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장비업체들이 이렇게 ‘공개 구애’를 하는 사이, 이통사들은 심사숙고에 들어갔다. SK텔레콤은 조만간 장비 선정과 관련해 CEO 보고를 한다는 계획이다. 이르면 다음 달 초 사업자를 선정할 전망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제로베이스(백지상태)에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KT 역시 기존 3개였던 장비 공급업체를 2개로 줄일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아직 확정된 게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LG유플러스는 4G 때처럼 화웨이 장비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익명을 원한 이통업계 관계자는 “5G를 상용화한다고 해도 당분간 5G와 4G 서비스를 병행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망 안정성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장비업체는 상당 기간 현행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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