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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개인정보 빅데이터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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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어떤 기분이 들까?

위치정보·진료기록·카드내역 등이

내 이름이 지워진 채로

내 동의 없이 기업에 넘어가

나에게 최적화한 서비스 제안하면?

가명정보 활용 어디까지

시민단체 “공익 목적만”

정부 “기업 영리목적도”

23일 ‘데이터 혁신 행사’

어디까지 나갈지 촉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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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사용 과정에서 수집된 나의 위치정보나 병원 진료기록, 신용카드 결제내역, 인터넷 검색기록, 인터넷 쇼핑몰 구매 내역 등이 ‘나의 이름이 지워진’ 채로 나의 ‘동의 없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면 어떨까?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기업이 이런 정보를 조합해, 나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나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안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정부가 데이터경제(빅데이터) 활성화 명목으로 산업계의 요구대로 ‘규제혁신’을 추진하면 이런 일들이 가능해진다. 빅데이터에 대한 규제완화가 개인정보 보호 장치 풀림을 동반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다른 규제완화 건 논의보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정보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번 규제완화가 부를 개인정보 침해 우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정부는 오는 23일 ‘데이터경제 활성화 규제혁신 행사’를 열어 데이터분야 규제완화에 관한 입법방향을 제시할 계획이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새로운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꼽히는 데이터분야 규제혁신을 통해 산업육성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이끌겠다”며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가치’의 기본은 ‘데이터’고, ‘양질의 데이터’는 개인정보에서 나오는데,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는 제 3자 제공 등이 불가능했던 점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을 통해 행정안전부·금융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시민·사회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왔다. 일단 정부와 시민사회·산업계는 지난 4월 유럽연합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에서 ‘가명정보’의 개념을 가져와 개인정보보호법에 명시하고, 이를 개인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활용 수 있도록 하자는데 합의했다. 가명정보는 개인정보를 ‘추가 정보와 결합하지 않고는 더이상 합리적인 방법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가공처리’한 것을 말한다.

문제는 이 가명정보의 활용범위다. 정부·시민사회·산업계는 가명정보 활용범위를 “공익을 위한 기록 보존의 목적, 학술 연구 또는 학술 및 연구 목적, 통계 목적”으로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연구·통계에 기업의 영리목적 활동이 포함되는지를 두고 시민사회와 정부 사이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학술 연구’는 말 그대로 ‘학술 목적 연구’로, 활용범위를 공익 목적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명정보’라 할지라도 추가적인 정보를 활용해 재식별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기업에 맡겨둘 경우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도 가명정보의 활용범위를 ‘공익적 목적’으로 한정해두고 있다. 반면, 정부는 사실상 가명정보 활용을 제한없이 열어둬야 한다는 기조다. 과기정통부는 “학술을 위한 연구 뿐만 아니라 산업적 목적의 연구 및 시장조사를 위한 목적에서도 가명정보를 이용가능하다는 점을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며 “모든 산업 영역에서의 데이터를 활용한 신기술 발전과 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이 논란은 유럽연합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의 문구 해석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유럽연합은 기업의 영리목적 가명정보 활용을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명시적 언급을 한 적이 없어, 대통령 직속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는 활용범위에 관한 법률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개보위는 지난 13일 김규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만들며 가명정보의 활용목적에 ‘서비스 제공 및 개선’을 포함시킨 데 대해 “서비스의 종류 또는 범위에 제한이 없이 사실상 가명정보를 무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해당 목적을 예측 가능하도록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유럽연합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개인정보보호법에도 가명정보를 영리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명시적 규정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활동가는 “혼란스러운 개인정보 보호 법제 정비와 감독기구 강화없이 개인정보 규제 완화와 활용만을 얘기하는 것은 이전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이라며 “현재의 규제 완화 드라이브는 촛불 민심의 반발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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