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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술 때문이야’ 언제까지 봐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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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묻지마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이미지 사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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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전주시 덕진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학원을 마치고 귀가중이던 고등학생 A(17)씨가 난데없이 벽돌로 머리를 맞는 일이 발생했다. A씨는 뒤통수가 찢어저 5바늘 정도를 꿰매야 했다. 가해자인 문모(24)씨는 당시 취한 상태였고, “헤어진 여자친구와 닮은 사람을 보면 죽이고 싶었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지난달 23일에는 포항시 영일대해수욕장 인근에서 이모(38)씨가 지나가던 A(60)씨에게 욕을 하고 옆구리를 발로 차는 등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씨는 당시 소주를 마신 뒤 거나하게 취해 있었으나, 사건을 기억은 한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지난 6월부터 A씨를 포함해 총 7명에게 ‘묻지마 폭행’을 가해, 14일 미만의 경상을 입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씨를 ‘동네 조폭’으로 보고, 폭력 혐의로 구속 및 기소의견으로 지난 17일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묻지마 폭행' 필수 조건은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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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전 경북 구미시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폭행당한 인턴이 흘린 핏자국.[사진 대한의사협회]




‘묻지마 폭행’이 연일 검색어에 오르고 있다. 경찰이 가해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같이 ‘술에 취한’ 상태였다. 지난달 31일 구미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철제 트레이로 의사의 머리를 때려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장모(24)씨는 당시 술에 취해 “전혀 기억이 안난다”고 진술했다. 응급실에 갈 때도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으며, CCTV를 보고서야 자신의 범행을 인지했다고 했다. 지난달 1일 전북 익산 응급실에서 의사의 얼굴을 때리는 등 폭행한 뒤 ‘죽이겠다, 교도소 다녀와서 보자’등 협박을 했던 임(46)씨도 소주 2병에 맥주 약간을 마신 뒤로, 자신의 일부 행동은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21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는 ‘주취감형’ 키워드로 127개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그중에는 ‘주취자 가중처벌’을 요구하는 글도 다수다. 지난해 12월에는 ‘조두순 출소 반대 및 주취감형 폐지’ 청원에 21만 명이 동의해, 청와대가 직접 답변을 한 적도 있다.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현재의 감경 규정은 음주로 인한 감경 목적이 아니라 일반적인 감경에 관련한 규정”이라며 “일률적으로 그 조항을 삭제해서 감경을 금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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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일어난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사진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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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했다고 감경 말라' 목소리 높아져도... 법 개정은 '제자리'
2008년 조두순 사건 이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는 '음주 감형' 제한 조항 생겼지만, 일반 폭행 등 다른 사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취중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여론의 비판이 일자 국회에서도 법 개정안 여러 차례 나왔지만 아직까지 국회를 통과한 것은 없다.

법조계에서는 감경조항 삭제 시 우리나라 법의 ‘책임주의’ 위배 가능성을 우려한다. ‘책임주의’란 ‘사람에게 분별 능력이 없을 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하는 형법의 대원칙을 말한다. 술을 마셔 분별 능력이 없는 상태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면, 지금까지의 형법의 대원칙이 흔들린다는 얘기다.

대신, 법조계에서는 감경을 배제할 수 있게 한 ‘형법 제10조 제3항’(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거나, 해당 특별법을 개정하는 쪽의 대안을 지지하는 의견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형사법 교수는 “주취 상태로 인해 책임을 감경해주는 비율이 사실은 많지 않으나, 언론에 드러나는 사건들에서 '주취로 인한 심신미약'이 강조되어서 유독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며 "여론 중 경청해야 할 부분은 비판적으로 반영하면서 법률 해석도 이미 충분히, 다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 번 ‘주취감형’ 문제가 떠오르는 것은, 언론이나 법조계가 ‘다각적인 양형’을 모두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돋보이는 ‘주취감형’만 눈에 띄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했다.

최근엔 '술 취하면 가중처벌' 형법개정안도
현재 국회에는 자유한국당 홍철호의원이 7월 26일 발의한 ‘형법일부개정법률안’이 상정돼있다. ‘형법 제10조 제3항 적극 적용’ 및 ‘자의적 음주행위 시 형법상의 각 죄에 따른 형을 2배까지 가중처벌하여 주취범죄의 경각심 제고’를 제안하는 내용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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