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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을들의 ‘벗’…9인의 민간 갑질 해결사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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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6년 설립 사단법인 벗…영세자영업자 등 무료 갑질 해결

변호사 4명, 상근 직원 3명…소송·분쟁조정 등 20여건 진행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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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못하는 일, 우리가 한다.”

2016년 초 변호사와 회계사 등 6명이 모였다. 이들은 재벌 대기업부터 프랜차이즈 본사까지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자행되는 불공정 행위, 이른바 경제적 ‘갑질’을 해결해 보자고 뜻을 모았다. 정부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있지만 서민들이 접근하기에는 문턱이 높고 절차도 복잡하다. 그해 4월 국내 최초 민간 갑질 해결기관 ‘사단법인 벗’이 출범했다.

이달 초 찾은 서울 서초구 ’벗’ 사무실에선 인천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김아무개 대표가 ’벗’의 이동우 변호사와 이윤주 변호사를 만나 상담을 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지난해 9월 건물 일부를 빌려 한 의류 브랜드 위탁 매장을 냈으나 매출이 예상을 밑돌았다. 재고가 쌓이자 본사는 공급 물품의 종류를 줄였고, 매출은 더 떨어졌다. 김씨는 “본사가 애초 약속보다 공급 물품을 줄였고, 2층을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도 거부했다”고 말했다.

“3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우선 공정거래조정원에 조정을 신청하는 방법이 있구요. 조정이 안되면 법원으로 넘어갑니다. 둘째로, 공정위에 신고할 수 있고, 셋째로 법원에 소송을 할 수 있습니다.”(이동우 변호사)

“조정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1년 동안 너무 힘들었고, 손해를 강요당했습니다.”(김 대표)

“그럼 법률적 방법으로 가야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이 변호사)

“휴.(한숨) 그렇게 하겠습니다.”(김 대표)

이날 김 대표는 벗을 믿고 본사에 대해 법률 대응을 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김 대표는 <한겨레>에 “온라인 검색을 하다 우연히 벗을 알게 됐다. 전문성도 있고, 무엇보다 돈 때문에 갑질을 해결해 주는 게 아니었다. 공정위에 신고하는 것도 생각해 봤는데, 그보다는 벗을 믿기로 했다”고 말했다.

벗은 크게 3가지 방법으로 갑질 사건에 대응한다. 우선 갑질 소송을 지원한다. 벗이 지원하는 불공정사건 전담 변호사 4명이 올해 초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해, 현재 10여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가맹분쟁 조정 신청도 지원한다. 부당행위나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입은 가맹점주들이 소송보다 낮은 단계인 ’가맹사업거래 분쟁조정협의회’를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는데, 이를 지원하는 것이다. 분쟁 조정 역시 현재 10여건 진행되고 있다. 공정거래 질서와 관련한 연구 지원 사업도 한다. 당장의 대응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갑을 관계를 바로잡고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다. 을의 처지에서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면 누구나 벗에 무료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벗은 상근 직원 3명이 앞에서 뛰고, 6인의 이사회가 뒤를 받친다. 이들은 다수의 변호사를 지원하는 방식 등으로 갑질 해결을 위해 뛴다. 공격과 수비를 겸하는 이동우 벗 상임이사는 “국내에 순수 인권을 보호하는 민간 기관은 많지만, 공정거래 등 사회권적 기본권을 보호하는 기관은 드물다. 미흡하지만 벗이 그 역할을 해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벗은 주로 개인 후원자 100여명과 일부 기업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된다.

벗은 갑질 해결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영세 자영업자 등 개인이 접근하기에 문턱이 높고 공무원들도 갑질 사건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동우 상임이사는 “우리 사회가 갑질 등으로 피해를 본 이들을 제대로 돕고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며 “갑질 사건이 단순한 개인간 갈등이 아니라 사회적 힘의 불균형으로 초래된 것으로 보고, 이를 해소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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