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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노래 부를 수만 있다면 나는 영원히 스물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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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소프라노 조수미 5년 만에 파크 콘서트 다시 올라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던 스물두 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음악원에서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가 하는 마스터클래스에 갔다가 얄짤없이 쫓겨났죠. 독일어를 못해서. 독일 가곡에 담긴 철학도 모르면서 그 노랠 부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선생님이 화냈거든요. 아, 언어가 그만큼 중요하구나! 다음 날부터 잘츠부르크에 석 달 더 머물며 독일어를 배웠어요. 여기까지 그냥 온 게 아니라니까요, 하하!"

서글퍼서 펑펑 울었던 34년 전의 '아픔'을 툭 털어놓는 이 소프라노를 이른 아침, 전화로 만났다. 조수미(56)는 지난 13일부터 모차르트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해요. 말도 못 해 쫓겨났던 학교에 이젠 선생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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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도 눈 뜨면 바로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였다. 평생 그렇게 달려온 스스로를 조수미는 "혼내주고 싶다"고 했다. "좀 놀아볼걸. 연애도 못 하고, 수다도 못 떨고. 그래서 젊은 애들한테 열심히 살라고 안 해요. 나처럼 후회할까봐. 내가 젊을 땐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 몹시도 외로웠죠."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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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다달이 다른 대륙에서 눈 뜨며 플라시도 도밍고·안드레아 보첼리처럼 자신의 이름을 건 콘서트를 여는 성악가. 늘 밝고 당찬 모습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몰고 다녀 성취로만 기억되는 그이지만 사실 조수미의 노래 인생은 '좌절'에서 시작했다. 1984년 처음 참가한 핀란드 콩쿠르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그는 예선 탈락했다. 상심한 딸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최고가 아니고, 일등이 아니어도 좋다. 아름다운 노래를 하면 된다." 다시 일어선 그는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역 질다로 데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카라얀)이란 극찬을 받으며 높이 날아올랐다.

그로부터 32년. 조수미가 또 한번 역사를 쓴다. 다음 달 9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관객 1만 명과 함께하는 파크 콘서트 '원나잇 인 파리(One Night in Paris)'를 연다. 올해로 9회째인 파크 콘서트는 지휘자 정명훈, 소리꾼 장사익 등 거장들만 서는 무대이나, 그는 벌써 세 번째 이 무대를 거머쥐었다. 2010년 당시 9000석을 몽땅 팔아치웠고, 3년 뒤 또 매진돼 1회 공연을 추가했고, 다시 5년 만의 귀환이다. "'원나잇'이라니 좀 야한가요? 파리는 1980년대 후반 마리아 칼라스 추모 10주년 음악회에 초대돼 처음 간 도시. 파리의 꿈 같은 하룻밤을 선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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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송 '장밋빛 인생',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넘버, 영화 '파리의 하늘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삽입곡 등 온통 프랑스 노래로 너른 벌판을 채운다. 슈퍼주니어 멤버 려욱이 특별손님으로 온다. 클래식과 대중가요를 넘나드는 공연에 "내가 잠도 안 자고 어떻게 공부했는데 마이크를 잡아야 하나 속상할 때도 있지만, 다른 음악도 존중하고 눈맞추는 게 기쁨이고 배려"라고 했다.

옛날엔 죽기 살기로 음악만 했다. 하루에 여덟 시간 피아노를 치지 않으면 문을 안 열어줬던 집념의 모친은 알츠하이머(퇴행성 뇌질환) 말기로 더 이상 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잠시 숨을 삼킨 조수미는 "한 인생이 '산다'는 것의 막바지를 엄마를 통해 본다"고 했다. "잡념이 많아졌어요. 10분이면 외웠을 악보를 이젠 한 시간이 가도 같은 자릴 맴돌고 있죠." 그러나 모든 건 동전의 앞뒤. "고난도 기교로 난리법석 떨 때도 좋았지만, 기교는 과감히 버리고 담백하리만큼 간결하게 때론 사정없이 몰아치며 부르는 데서도 전율은 오더라"고 했다.

영어·이탈리아어·독일어·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우리말 '사랑해'. 살면서 자만하지 않으려 애썼고, 한땐 지독히도 외로웠다. "옆에 반반한 남자 하나 없지만, 관객과 노래로 껴안을 때 '오 마이 갓! 인생은 장밋빛이구나'를 느낀다"고 했다. 올해로 쉰여섯. 전성기는 언제였느냐 물으니 그가 나지막이 답했다. "음악으로 기쁨을 주는 예술가에게 나이는 없죠. 조수미는 그냥 조수미이고, 건강하게 눈 뜨고 아름다운 노래 부를 수만 있다면 내 나이는 '포에버 26'(영원히 스물여섯)이에요."

One Night in Paris=9월 5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9일 오후 7시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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