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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55년 된 안양교도소, 대법서 재건축 판결 났지만 지자체 반대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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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교정시설 절반이 30년 넘어

“정부, 시민 불안 해소책 만들고

민간자본 유입해 과밀수용 해결을”

2018 교도소 실태보고서 ⑤
중앙일보

거창구치소 신축 공사가 진행되기 전인 2014년의 모습(왼쪽). 한센인 집단 거주 마을과 축사가 보인다. 거창구치소는 법조타운 형태로 건립 예정됐지만 주민 반발로 지난해 12월 공사가 중단됐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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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교도소와 구치소는 대표적인 기피 시설이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누구도 반기질 않는다. 전국 53개 시설 중 절반 이상이 30년 이상 된 노후 시설임에도 이전이나 재건축 이야기를 쉽사리 꺼낼 수 없다. “땅 값 떨어진다” “아이들 교육과 안전에 해롭다” 등 늘 거센 반발에 직면한다. “교정시설 유치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 여자교도소나 교도소 체험관 등을 추가로 유치하겠다”며 반긴 곳은 교도소 4곳이 밀집한 경북 청송군이 유일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농작물을 몰래 훔치는 ‘서리’를 주제로 ‘도둑놈 축제(가칭)’도 기획했다.

경남 거창군엔 공터 20만㎡(상림리와 가지리 일대)가 3년째 방치 상태로 놓여 있다. 축구장 28개 규모다. 이전엔 한센인들이 집단 거주하던 마을이 있었다. 소, 돼지 축사도 많아 가축 분뇨 냄새가 심각했다. 인근 1km 외곽에 밀집한 아파트촌에서 집단 민원이 잦았다.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거창군의 대표적인 낙후지였다.

그러다 군이 2011년 초에 묘수를 냈다. 대용구치소(경찰서 유치 시설 일부를 구치소로 사용하던 공간) 해소 방침에 따라 정부가 거창군에 계획한 구치소·교도소 신설을 앞당겨 추진하자는 방침이었다. 법원(창원지법 거창지원)과 검찰청(창원지검 거창지청)을 한데 묶어 법조타운을 조성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군은 그해 2월에 거창법조타운 유치위원회를 결성했다. 주민 3만 명의 동의를 받는 서명운동도 벌였다. 법무부에 법조타운 유치를 위한 군민 건의문 전달(2011년 3월)→거창구치소 신축 부지 선정에 대한 법무부 장관 보고(그해 4월)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군수는 이후 3년간 수십 차례에 걸쳐 대법원·법무부·기획재정부·안전행정부 등 중앙부처를 찾아다니며 사업의 조기 착수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법조타운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실상은 교도소, 보호관찰소, 소년원 등 이른바 혐오시설 집합소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부지 인근에 11개의 학교가 있다는 사실도 부각됐다. 하지만 전임 군수가 연임에 성공하면서 거창군은 법조타운 유치를 밀어붙였다. 한센인 마을을 이주시키고 이듬해 11월에 법조타운 공사는 첫 삽을 떴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갈수록 거세졌다. 결국 지난해 12월에 공사가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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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지 55년 된 안양교도소는 대법원에서 재건축이 타당하다는 판결을 받고도 여전히 주민 반대에 가로 막혀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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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낡은 시설인 안양교도소(1963년 건립)는 더 심각하다. 이전과 재건축 논의가 1999년부터 시작됐지만 19년째 진전이 없다. 당시 법무부는 안전진단 결과를 토대로 안양시에 재건축 협의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무시당했다. 정부와 시의 갈등은 소송으로 번졌다. 2014년 대법원 판결까지 2년여간 세 차례 재판의 결과는 모두 안양시의 패소였다. 하지만 시와 주민들은 ‘재건축 불가, 다른 도시 이전’을 고집했다. 기획재정부가 2015년에 안양교도소 이전을 포함한 경기남부법무타운 조성 계획을 세웠지만 아직도 정해진 건 없다.

법무부는 현재 11개 시설에 대해 이전 또는 신축을 추진 중이다. 교정본부는 “비슷한 갈등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님비(NIMBY)’를 뚫지 못하면 정부는 과밀 수용에 따른 재소자들의 피해를 배상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헌법재판소가 “과밀수용이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위헌 결정(2016년 12월)을 내렸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2023년까지 교정시설을 추가로 지어 과밀 수용을 해소해야 한다. 지난해엔 부산고등법원에서 과밀 수용에 따른 재소자들의 피해에 교도소가 하루 수감당 9000원씩 총 450만원을 주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백철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교수는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스스로 담장을 낮추고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할 필요도 있다”며 “민간 자본과 인력을 유입해 과밀 수용을 해소하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킨 일본 모델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윤호진·윤정민·하준호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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