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89명 북측 185명 금강산 상봉
“살아줘서 고맙다” “왜 이리 늙었냐”
부인 임신 몰랐던 80대, 67세 딸 만나
조카 만난 90대 할머니 의식 잃기도
국군 포로, 납북자 6가족도 포함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가 20일 2년 10개월 만에 강원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고령의 부모들은 북에 두고온 자녀들과 재회했다. 사진은 남측 이금섬(92) 할머니가 북측 아들 이상철(71)씨를 만났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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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식(89) 할아버지의 얼굴엔 회한이 가득했다. 그는 이날 태어난 줄도 몰랐던 67세 딸(연옥)의 얼굴을 처음으로 대면했다. 유 할아버지는 신혼이었던 1951년 1·4 후퇴 때 부인과 헤어졌는데, 부인이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상봉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딸의 ‘존재’를 알게 됐다. 유 할아버지는 딸 앞에서 애써 눈물을 참았지만 딸은 처음 본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물로 숨기지 못했다.
남측 함성찬(99) 할아버지는 북측에서 온 동생 동찬(79)씨를 만나기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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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사위를 데리고 상봉장을 찾은 송영부(92) 할머니는 북측의 조카들을 만난 뒤 의식을 잃고 의료진에 실려 나갔다. 정부 당국자는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들이 워낙 고령인 데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행사 때마다 기절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번에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구급차와 의료진이 함께 대기했다”고 말했다.
상봉장에선 주름살 파인 얼굴을 서로 쓰다듬으며 “왜 이렇게 늙었냐” “살아줘서 고맙다”고 서로에게 얘기하는 이들의 모습이 계속됐다. 남측 최고령 참가자인 백성규(101) 할아버지는 북측의 며느리와 손녀를 만난 뒤 눈물을 흘릴 수 없었던지 오히려 미소를 보였다.
남북 이산가족 간 대화가 이어지며 안타까운 얘기도 오고갔다. 상봉장에 나와야 할 당사자가 올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주고받으면서다. 2000년부터 이산가족 찾기 신청을 한 조옥현(78)씨와 남동생 복현(69)씨는 6·25전쟁 때 헤어진 북측의 둘째 오빠가 올해 사망해 대신 둘째 오빠의 자녀들을 만나게 됐다.
옥현씨는 “동생 복현이가 전화해 ‘큰형이 살아 있으면 85세’라고 말했다”며 “북한에서 오빠들이 살아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동생 복현씨는 그럼에도 “아버지와 형님 생사확인만이라도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만나게 되니 완전히 로또 맞은 기분”이라며 “(조카들에게) 자손이 또 있는지, 아버지 산소는 어디 있는지, 제사는 지내는지 등 질문할 것을 수첩에 적어놨다”고 말했다.
올해 99세의 한신자(오른쪽) 할머니는 북측의 두 딸 김경실(72)·경영(71)씨와 만나는 등 모자모녀의 상봉이 이어졌다.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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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속초에서 출발해 이산가족 상봉 장소인 금강산까지 버스로 이동한 남측 가족들은 숙소인 외금강 호텔에 여장을 풀고, 첫 상봉 예정시간인 오후 3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60여 년의 세월을 기다렸지만 상봉을 앞둔 가족들에겐 1분 1초가 지루했다. 양복과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남측 가족들의 입장을 기다리던 북측 가족들의 시선은 출입문에 고정돼 있었다. 남북 당국은 편의상 가족별로 고유번호를 부여했고, 각 가족은 번호가 부착된 테이블에서 상봉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헤어질 때 갓난아기는 허리가 굽었고, 기저귀를 차고 있던 딸은 칠순이 되다 보니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궁여지책이다. 이날 89명의 남측 이산가족이 북측 가족 185명과 분단 이후 65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전시납북자와 국군포로 6가족도 이날 눈물의 상봉단에 포함됐다.
20일 오후 북한 금강산 호텔에서 북측 접대원들이 상봉 가족들을 보며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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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기존 13만2603명(7월 31일 기준)의 상봉 신청자 중 현재 5만6862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80세 이상이 62%(3만5571명)를 차지해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갔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경우가 7건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북 당국이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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