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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야! 한국 사회] 사회적 대학 / 김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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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3년 후면 38개 대학이 폐교된다. 인구절벽 때문이다. 대학의 위기는 한국 사회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대학은 서양 문화의 산물이며 중세시대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교수는 교과서로 강의하고, 학생은 그 내용을 받아쓴다. 대학은 진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세시대의 대학은 혁명적 발상이었다. 수도원이라는 종교적 공간으로부터 학문을 세속화했기 때문이다.

흔히 ‘자유교양’이라 불리는 중세대학의 전통은 17세기 급격히 성장한 근대과학을 포용할 수 없었다. 인문학 중심의 읽고 쓰기 교육은 실험과학자를 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시기 영국에서 과학자 로버트 보일은 대학이라는 물리적 공간 밖에 실험과학의 정신을 공유하는 과학자 간의 연결망을 만들었다. 이 ‘보이지 않는 대학'은 훗날 영국왕립학회의 전신이 된다. 보이지 않는 대학과 영국왕립학회의 설립은 근대과학이 유럽 대학 안에서 인문학과 동등한 위치를 획득하는 계기가 된다.

보이지 않는 대학은 혁명이었지만, 과학자를 사회에서 격리시켜 오로지 진리추구의 상아탑에 매몰시켰다. 하지만 19~20세기 근대과학이 무르익던 시기에 세계는 제국주의로 인한 전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바로 이 시기 다시 영국에서 진보적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당대 영국 최고의 과학자들이었던 이들은 과학자인 동시에 영국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다. 영국 노동당의 역사엔 수많은 과학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때부터 과학은 사회와 강력한 교점을 갖기 시작했다. 과학사가 게리 워스키는 보일의 보이지 않는 대학과 대비해 이들을 ‘보이는 대학’이라 불렀다.

20세기 중반, 대학의 축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대학원은 미국을 기원으로 한다. 일반교양을 넘어 연구대학을 추구했던 미국 대학의 모델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후의 전개과정은 복잡하지만 또 단순하다. 미국식 대학은 출신 대학으로 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이후 엄청난 교육비용의 인상을 가져왔다. 대학은 철저히 자본에 종속된 시스템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아이보리 타워>는 한계에 봉착한 미국 대학 시스템의 자화상이다. 한국은 그 미국식 시스템을 죽어라 쫓아왔다.

매듭을 만든 곳에서 매듭을 푸는 시도들이 나타나곤 한다. 이제 미국은 새로운 대학들의 용광로다. 미네르바 스쿨은 캠퍼스가 없는 대학이다.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으며, 1년마다 국가를 바꿔가며 혁신적인 온라인 플랫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육을 경험한다. 피-테크(P-TECH·고숙련 일학습병행제)는 아이비엠(IBM)이 투자한 혁신학교로, 기업이 직접 커리큘럼에 참여하며, 6년 동안 고등학교와 전문대 과정을 합쳐 다양한 혁신기술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모델이다. 대학은 변하고 있다.

미네르바 스쿨에 대한 한 신문기사엔, 국내 교육계 전문가라는 이들의 짤막한 코멘트가 달렸다. 모두가 50~60대 남성으로 구성된 그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은 문화혁명”, “메가트렌드는 융복합”, “호모 쿵푸스” 따위의 신조어를 내세우거나, “인공지능에 대항하는 인간 경쟁력은 인성”이라는 식의 유치함에 갇혀 있다. 교수들의 상상력은 최악이다.

한국은 청춘의 지옥이다. 한국 대학이 새로운 꿈을 꾸려면 바로 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다시 미국의 유행이나 좇을 게 아니면 이제 한국 대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새로운 대학은 철저히 사회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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