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시론] 제발 법 좀 지켜달라는 것뿐입니다 / 김재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한겨레

김재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조합원


모두가 폭염과 열대야가 빨리 끝났으면 합니다. 고공에서 농성하는 저도 그렇습니다. 혹한기에는 비닐 한장으로 버티면 되지만 폭염에는 땀으로 목욕하는 것 외엔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듯 지상보다 기온이 7~8도 더 높은 전주시청 조명탑 위의 농성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냉탕과 열탕을 오가는 것 같습니다.

8월21일로 고공농성 352일째를 맞았습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전주의 저와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파인텍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어떤 때는 답답하고 외롭지만 택시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새로운 사람들이 생기기에 매일매일을 버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오래 농성을 하냐? 고공에서 사계절을 보내니 힘들지 않냐?’고 저에게 묻습니다. 저는 아주 간단하게는 “법을 지키라”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법인택시 사업주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운송수익금을 전액 관리”하고, 택시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도 법인택시 전액관리제에 대해 ‘시민의 안전한 이동권 확보’라는 취지로 수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위반해도 처벌받는 사업주는 없고, 생활임금을 받지 못하는 택시노동자는 먹고살기 위해 하루 12~16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법을 지키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저를 포함한 전주 지역 택시노동자들은 2014년부터 전액관리제 시행을 요구하며 싸웠고, 2016년 2월 전주시청을 포함한 노사정이 함께 “2017년 1월부터 전액관리제를 시행하겠다”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1월이 되어도 전액관리제는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존 사납금제가 택시 사업주의 확실한 이익보장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사납금제는 최악의 불경기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회사에 보장합니다. 택시기사가 택시를 끌고 나가면 매일 일정한 금액을 택시 업주에게 납부하기 때문입니다.

택시노동자들은 사납금을 빨리 채우고 나머지 돈을 생활비로 쓰기 위해,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기본급이 삭감되지 않기 위해 ‘과속, 난폭운전, 신호 무시 등 위험한 곡예운전’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또한 택시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된 2010년 이후 최저임금 인상분보다 사납금 인상분이 더 많아서 해마다 실제 수입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을 해도 빚만 늘어나는 택시노동자들의 또 다른 이름은 ‘워킹푸어’입니다.

택시는 사업용 자동차 중 ‘교통사고율 1위, 사망 사고율 1위’를 기록 중입니다. 사납금 제도 탓에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곡예운전을 멈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택시를 이용하는 모든 시민의 목숨과 다른 운전자의 생명을 위해서도 불법적인 사납금제는 근절돼야 합니다.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면 택시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택시노동자뿐 아니라 택시를 이용하는 시민, 다른 운전자 모두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행정관청은 법규의 시행을 관리·감독하며,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저희는 법이 정한 대로 ‘법인택시 전액관리제를 시행해달라’고 몇년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딱 그 한가지 “법 좀 지켜라”라며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목숨을 담보로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 택시노동자들의 삶을, 운전하는 기계가 될 수 없다는 택시노동자들의 절규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전액관리제가 하루빨리 시행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십시오. 오는 9월1일 전주시청 앞에서 여는 ‘노동자·시민 공동행동’에 많은 분이 답해주실 것이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오늘의 추천 뉴스]
[▶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