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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왜냐면]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연금자본주의’의 시작 /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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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국민연금 제도개혁과 관련하여 노후소득 보장이냐, 기금재정 안정이냐 하는 해묵은 쟁점이 또다시 불붙고 있다.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볼 때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아무리 기금안정을 원해도 당장 노후보장을 해줄 수 없다면 연금제도의 취지가 퇴색될 것이고, 반면에 오랫동안 기금안정이 되지 않으면 적절한 노후보장을 장담할 수 없기에 이 둘은 떼어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거시적인 국민연금 제도개혁도 중요하지만, 미시적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도 대단히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올해 635조원의 기금을 운용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에만 130조원 넘게 투자하는 한국의 대표적 기관투자가다. 그럼에도 삼성의 편법 경영권 승계나 한진그룹의 갑질 논란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전가되는 상황에서 자본시장의 대주주로서 국민연금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서 지난 7월 말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합의를 거쳐, 오너 지배체제가 강한 한국 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고객 이익을 극대화하고 투자기업의 가치 제고와 경영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인 스튜어드십 코드(이하 코드) 도입을 한 것은 자연스럽다.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투자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행동 지침으로 법률은 아니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정부의 경영간섭, 연금사회주의 강화, 해외 헤지펀드의 놀이터론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코드 도입으로 생길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하여 긍정적인 측면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있어 합리성이 부족해 보인다.

코드 도입과 관련해 우선 국민연금 기금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11년 유엔이 발간한 ‘유니버설 오너십’(Universal Ownership) 보고서에 초대형 장기 투자기관들의 투자방식이 잘 나와 있다. 유니버설 오너들은 특정 기업이나 산업의 주주가 아닌 해당국 자본시장 전체의 주주가 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민간펀드들은 매매를 통한 수익률 및 위험관리가 가능하지만, 유니버설 오너들은 높은 보유 지분율 탓에 매매가 자유롭지 못하다. 매도할 경우에는 엄청난 출구비용을 치러야 하는 까닭에 자칫 선량한 관리자(스튜어드십)의 의무 위반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딜레마를 풀기 위해, 글로벌 유니버설 오너들이 발전시켜온 투자방법론이 바로 코드의 ‘주주활동’이다. 즉 이들 오너는 기업의 우발채무인 ‘환경적, 사회적, 거버넌스’(ESG) 위험요소나 재무위험이 감지되면, 그것을 어떻게 제거하거나 최소화할 것인가를 모색하고 실행에 옮긴다. 기업과의 우호적 대화채널과 여러 대안을 내어놓는다. 이 모든 대화 과정을 ‘단기’가 아닌 ‘장기 관점’에서 진행한다. 즉 단기간에 기업을 압박해서 주가를 끌어올린 후 차익을 실현하고 빠져나가는 투자방식과 코드에서 말하는 장기 가치 제고 목적의 주주활동은 완전히 다르다.

다음으로 코드 도입 비판론자들은 연금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는다. 보건복지부 산하에 위치한 까닭에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국민연금을 금융통화위원회 수준의 독립적이며 전문적인 기구 밑에 두고, 그 뒤 코드를 도입한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이러한 연금의 지배구조 개혁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도 실현하지 못했던 난제 중 난제다.

이 개혁을 놓고 지난 10년 이상 갈등과 대립만 반복했을 뿐 한 발짝도 못 나갔다. 또다시 연금 지배구조 문제를 꺼내려면, 먼저 친기업 정부 집권 당시 왜 못 했는가에 성실히 답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혁이 난제인 까닭에, 코드 도입은 연금의 독립성 결여라는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최적의 현실적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즉 코드를 도입하면 다양한 장치를 통해 정부의 입김이나 기금운용본부 내부의 자의성을 최소화할 수 있고, 그 절차와 과정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코드는 연금 가입자들의 이익과 정부의 이익이 부딪쳤을 때, 무조건 전자의 이익 관점에서 생각하고 의결하고 행동한다는 투자의 원칙이며 선언이다. 이것은 ‘연금사회주의’도 관치도 아닌, 시장 수단인 주주권의 행사를 통한 분명한 ‘연금자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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