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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지역이 중앙에게] ‘소년은 울지 않는다’ 그리고 ‘런던 프라이드’ /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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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황민호
<옥천신문> 편집국장


친절하고 사람 냄새 나던 농촌 마을이 ‘지옥’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국가가 조장하는 ‘정상성’과 ‘표준’에 대한 뿌리 깊은 문화적 편견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피해의식과 버무려지면 어떻게 변주될지 모른다. 겉보기엔 선한 사람들에게 탑재된 보이지 않는 편견들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또 담합하여 집단의 힘으로 ‘린치’를 가할 때,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폭력과 견딜 수 없는 배제가 되어 사람을 내동댕이친다.

<소년은 울지 않는다>(1999)란 영화는 보기에 선한 보통 사람들에게 잠재된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막지한 일상의 폭력을 내밀하게 보여준다. 공포영화처럼 섬뜩하다. 알고 있다. ‘여성이 담배 피우는 것’ 자체가 아직도 금기시되는 가부장적인 지역 농촌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이란 굳이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 실재할 수 있어 공포감을 더했을 것이다.

반면, 그보다 훨씬 뒤에 만들어진 <런던 프라이드>(2014)란 영화는 어떤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대하여 하나가 된다는 것, 편견을 깨부수고 사회적 약자로서 함께 싸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작은 시골 마을의 광업 노동자들과 성소수자들이 부문별 운동을 하면서 어떻게 연대하고 함께 싸우는지를, 서로가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하나둘 벗겨내면서 함께하는 그 과정이 정말 아름답다.

사회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노동운동, 농민운동, 지역운동(분권과 자치, 공동체), 성소수자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시민운동은 물론 복지, 교육, 언론, 정치, 사법 개혁 등 부문별 운동의 개별적 중요성을 따로 말하는 것은 입 아픈 일이다. 부문별 의제의 절박성은 각 부문 활동가들이 너무나 절실하게 느낄 터이지만, 이 부문별 운동은 사실 연대하고 함께할 때 빛을 발한다.

건설 노동자들이 환경운동가, 지역공동체 운동가와 함께 개발을 저지하고 숲을 지킬 때, 전기 노동자들이 대규모 송전탑 건설에 반대할 때,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성소수자운동과 여성운동을 지지하고 함께할 때, 도시 주민과 노동자들이 농민운동을 지지할 때 우리는 희망에 대한 전율을 짜릿하게 느끼며 변화의 물꼬를 마련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발만 걸치는 것이 아니다. 대상화된 운동은 연대의 방식이 아니다. ‘도와준다’는 말의 모순을 알고 있다. 흔히 ‘남자가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말은 주체로서가 아니라 ‘내 일이 아닌데’ 도와준다는 의미로 쓰인다. ‘돕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타자화된 말이다. ‘양’의 문제가 아니라 자세와 지향이 다른 말이다.

네 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 일로서 함께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내 일, 우리 일로 닥칠 문제다. 사실 칸막이는 관료주의의 산물로만이 아니라 부문별 운동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내 것으로 끌어안아 함께 싸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장이고 변화이며 희망이 된다.

최근 옥천에서도 무기 계약직 의회 속기사가 관료사회의 갑질과 성희롱 등으로 끝내 퇴직했고, 이를 폭로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지금에 와서 왜’ ‘다 큰 성인이 왜 그때 정식으로 문제제기 안 했느냐’ ‘행실을 어떻게 했으면 그랬겠느냐. 너는 잘못 없느냐’ 등 반응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음에 좌절한다.

물론 연대하고 함께하려는 지역사회의 목소리는 그나마 한 줄기 희망이다. 내 운동만 중요하고 너의 운동은 중요치 않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희정은 유죄’다. 그리고 사법부는 철저하게 개혁해야 한다. 이제 판사도 검사도 주민들의 손에 의해 탄핵되고 선출되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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