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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만파식적]사병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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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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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 기간 내내 유독 좋지 않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불교계의 관계를 더 악화시킨 일이 1996년 초 벌어졌다. 김 전 대통령이 국방부 영내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예배 참석 외 사병의 외출을 금지한 것이 발단이었다. 조계종 등 불교계는 “불자 사병의 외출을 금지한 것은 종교 탄압”이라고 반발하고 나섰고 청와대는 이 문제를 수습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고 한다.

굳이 이 일화가 아니더라도 군대에서 ‘외출’은 민감한 사안이다. 대한민국 군의 사병 외출 규정은 세계적으로도 엄격한 편이다. 평일은 물론이요 주말에도 예외적으로 허용되다 보니 사병의 외출은 포상적 성격이 강하다. 오죽하면 군인들이 호환·마마보다 무서워하는 것이 외박·외출이 전면 금지되는 ‘비상경계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6·25전쟁 직후 안보의식이 한창 높아지던 1950년대 중반에는 사병 외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남달랐던 것 같다. 1955년 당시 수도 서울의 방위 임무를 맡았던 해병 1사단장은 우수 이등병들을 선발해 12일간 순차적으로 ‘서울관광 외출’을 시켰는데 당시로는 꽤 영향력 있는 여성단체인 ‘대한부인회’가 직접 나서 이들의 안내를 맡았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외출이 모든 사병에게 반길 일은 아니었다. 전후 가장 큰 민생문제는 먹고사는 것이었으니 군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당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1957년 6월 국회가 채택한 군 실태 조사를 위한 ‘긴급결의안’이었다. 민의원인 박해정 의원이 제출한 이 결의안에 따르면 보급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예비사단에서 급식 비리가 잇따르자 일부 부대에서는 급식량을 줄이기 위해 사병들을 강제로 외출시키는 일이 잦았다. 억지로 외출을 나온 장병들이 저지른 범죄는 사회문제가 됐고 급기야 군은 이듬해 초 외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해야 했다.

건군 70년 동안 유지돼온 병영 문화가 또다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부가 10월 말까지 13개 부대 사병의 평일 일과 후 외출을 두 달간 시범 실시한 후 이르면 내년부터 이를 전군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병의 외출 허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자유로운 병영생활도 좋지만 가뜩이나 복무기간 단축으로 군 전력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평일 외출 허용이 기강을 흩뜨리지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두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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