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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필동정담] 달동네 `에스컬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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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홍콩을 여행한 이들은 예술거리 소호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Mid-Level Escalator)'를 한번쯤 타보았을 것이다. 번화가인 센트럴과 고층지대 주거지역 미드레벨을 잇는 이 에스컬레이터는 20개 에스컬레이터와 3개 무빙워크로 구성돼 있다. 세계 최장(800m)의 옥외 에스컬레이터이며 해발 135m까지 올라갈 수 있어 홍콩의 명물로 꼽힌다. 야외에 설치된 이 독특한 에스컬레이터는 영화 '중경삼림' '다크나이트'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출퇴근 시간을 감안해 오전 6~10시는 하행으로, 오전 10시~밤 12시는 상행으로 운행해 현지인들이 실제로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개방형 난간으로 주변 경관이 보이고 중간중간에 있는 출구를 통해 거리로 나갈 수 있어 관광객에게도 인기다. 홍콩 여행 때 타보았는데 좁다란 골목이 즐비한 언덕배기 소호가 관광객으로 북적일 수 있게 된 것은 이 에스컬레이터 덕이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에서 한 달살이를 마친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북 우선 투자'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오르막과 구릉지 등 기존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어려운 강북 달동네에 경사형 모노레일,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곤돌라 등을 설치하겠다는 구상이다. 홍콩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서울시는 신유형 교통수단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데 연말께 5개 도입 대상지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통 취약계층을 배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파른 경사지나 비탈길에 서울의 역사와 문화라는 콘텐츠를 입히면 관광 명소화할 수도 있다. 2016년 168개의 가파른 계단이 있는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길에도 '168계단 모노레일'이 개통됐는데 동네 어르신들의 고충이 해결됐을 뿐 아니라 입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번듯한 관사를 놔두고 불볕더위에 박 시장이 옥탑방살이를 자처한 데 대해서는 '정치쇼' '보여주기 행정' '대권 행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박 시장의 달동네 체험이 모노레일, 곤돌라 등 신교통수단 도입으로 연결된 것은 시민들에게 소득이다. 쇼든 아니든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은 맞는 말이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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