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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연호의 과학 라운지]⑤식물 발아 시점 조절에 담긴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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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 억제 호르몬 '앱시스산' 배젖에서 생성

ABC수송체, 앱시스산 이동시키며 종자 휴면 상태 유지

[편집자주]최근 서울대 공대가 내년부터 신입생 중 고등학교 때 물리Ⅱ를 배우지 않은 학생들은 ‘물리학 기본’ 수업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물리학 등 기초과학에 대한 준비를 못 하고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이 물리학 강의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학 측이 물리학 기초 교육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수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그 중요성은 점차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기초과학은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져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기초과학의 세계에 쉽고 재미있게 발을 들여 보자는 취지로 매주 연재 기사를 게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전국 초·중·고등학생 대상 과학 교육 프로그램인 ‘다들배움’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들과 매주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중 재밌는 내용들을 간추려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이데일리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북극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라는 곳엔 인류 종말을 대비한 창고가 하나 있다. 바로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Svalbard Global Seed Vault)다. 지난 2008년 유엔 산하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이 노르웨이 북부에서 1000km 떨어진 영구동토층인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섬에 2억 달러를 들여 건립한 이 저장고에는 세계 각국에서 맡긴 약 450만 종의 씨앗이 보관돼 있다. 훗날 지구에 닥칠지도 모를 대재앙을 대비해 후손들의 생존을 생각해 지구 상의 거의 모든 종자들을 저장한 곳이다. ‘최후의 날 저장고(Doomsday vault)’라고도 불리는 이 저장고는 인류에게 있어 씨앗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씨앗을 보존하는 것은 중요하다. 식물학자들은 바로 이 소중한 씨앗들의 생체 메커니즘을 이해함으로써 씨앗들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진행한다. 식물도 동물처럼 겨울잠을 잔다. 이를 종자 휴면이라 부른다. 각 식물 종별로 최적의 수분, 햇빛, 기온 등 외부 환경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싹을 틔운다. 이를 다른 말로는 발아라고 하며 식물은 발아 전까지 최상의 안전한 상태인 껍질인 채로 존재한다. 이 껍질 안에서 자신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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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휴면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호르몬 즉 발아 억제 호르몬은 앱시스산(abscisic acid)이라는 이름의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배아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배젖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이 호르몬은 어떤 원리에 의해 배아까지 영향을 미칠까. 지난 2015년 POSTECH(포항공과대학교) 이영숙 교수 연구팀이 이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팀은 호르몬 작동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를 이용해 실험했다. 우선 0.2밀리미터(mm) 작은 씨앗의 껍질을 일일이 바늘을 이용해 까 배아와 껍질을 분리했다. 다만 한 쪽의 껍질은 앱시스산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껍질이었고 다른 한 쪽은 앱시스산이 분비되지 않는 돌연변이였다. 그 결과 앱시스산이 분비되는 껍질 위에 올려 놓은 배아는 싹을 틔우지 않은 반면 앱시스산이 나오지 않는 껍질 위의 배아는 싹을 틔웠다.

배젖에서 만들어진 앱시스산을 배아와 배젖의 경계인 세포막에 있는 ABC수송체라는 단백질이 배아로 이동시켜 종자의 휴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ABC수송체가 식물의 발어 억제 과정에서 택배기사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종자 휴면 유지에 필요한 앱시스산의 수송 원리를 밝혀 내면서 이를 종자 품종개량사업에 응용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수확 전의 이삭에서 싹이 트는 이삭발아 같은 현상을 방지할 수 있어 농산물의 생산성은 물론 상품성도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움말=임소정 과학커뮤니케이터(식물세포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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