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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삶과 추억] 저개발국 빈곤·에이즈 퇴치 앞장 … “고통받는 이 옆엔 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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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유엔 이끈 코피 아난 별세

평직원 출신, 흑인으론 첫 사무총장

2001년 현직 때 노벨평화상 수상

중앙일보

코피 아난. [AFP=뉴스1]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남겨줄 미래와 지구에 대해 생각해야만 합니다.”

코피 아난(사진)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간) 스위스 베른에서 숨졌다. 향년 80세. 코피 아난 재단은 “고통이 있고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서 사람들을 어루만지던 그가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유엔 평직원에서 시작해 사무총장 자리에 올라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한 시대의 큰 별이 졌다는 소식에 전 세계에선 애도의 물결이 넘쳐 흘렀다.

코피 아난은 1938년 아프리카 가나에서 판티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국 식민지였던 가난한 나라였지만 소년의 꿈은 컸다. 자국 대학에 다니다 미국으로 간 아난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유엔과 인연을 맺은 건 1962년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 예산·행정담당관으로 제네바·뉴욕 등을 누비며 활동하던 그는 1993년 유엔평화유지군(PKO) 담당 사무차장으로 발탁된다. 그리고 1997년 유엔 제7대 사무총장 자리에 오른다. 유엔 평직원 출신으로도, 흑인으로서도 최초였다.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방만한 조직을 개혁하는 데 앞장섰다. 30여년간 쌓은 내공으로 조직을 장악한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저개발국의 빈곤과 에이즈 퇴치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미국에 강한 목소리를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1년 9·11 테러 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자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유엔 분담금을 연체하는 방식으로 아난을 옥죄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2001년 그는 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전 세계가 평화로 가는 유일하면서 협상 가능한 통로인 유엔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 수상 이유였다. 다음 해 재선에 성공해 2006년까지 유엔을 이끌었다.

아난 전 총장의 별세 소식에 전 세계 지도자들은 앞다퉈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그는 세상을 ‘선’으로 끄는 힘이었고, 유엔 그 자체였다. 독보적인 카리스마로 유엔을 새천년으로 이끌었다”고 애도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위대한 지도자 아난은 그가 태어난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떠났다”고 추모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여러 문제에서 공동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 우리는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슬퍼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SNS에 글을 올려 “세계인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평화를 위해 고단한 길을 걸었던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또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그의 응원도 특별히 가슴에 새길 것”이라며 “오직 평화를 추구하는 일이 코피 아난을 추억하는 방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엔은 태생적으로 강대국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제기구지만 공교롭게도 아난의 퇴임 이후 그 입지가 더 좁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에는 더욱 흔들리고 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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