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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폭염보다 힘든 '에어컨 갑질'…乙 노동자들 "참 각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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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집 방문해 일하는 학습지 교사, 설치 기사 등

"틀어놨던 에어컨도 꺼버려…더워서 일 집중 안 돼"

불평은 못하고 각박한 민심에 여름마다 고된 업무

"에어컨 켜고 음료수 한 잔 주는데 거듭 감사 표시"

"인권의식 머리엔 존재해도 행동으로 내재화 부족"

"돈만 주면 그만이라는 인식…노동 존중 교육 필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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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지은 윤슬기 기자 = "한 번은 정말 노트 위로 뚝뚝 떨어질 정도로 땀이 흐르더라고요. 아이도 더워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에어컨을 안 틀어주니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습지 교사 김모씨·35)

올해 역대급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이 지속되는 가운데 실내에서 근무하면서도 고충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다. 직접 고객의 집을 방문해 업무를 하게 되는 학습지 교사, 설치 기사 등이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실내 온도조차 30도가 넘어가는 무더운 날씨에도 외부인에게 에어컨을 안 쓰는 집주인들의 이기심이다. 무더위 자체도 힘들지만 그 마음 씀씀이와 태도에 업무 능률이 떨어진다며 이를 '에어컨 갑질'이라고 불렀다.

3년간 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는 김씨는 "올해 유난히 더위를 버티기 힘들었는데, 방문하면 거실에서 수업을 해도 틀어 놓은 에어컨을 꺼 버리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러다보니 힘들어서 교육에도 집중이 안 되고 더워서 빨리 끝내고 나가고 싶단 생각만 들더라"고 하소연했다.

가전 설치기사 업무를 하는 이모(43)씨도 각박한 민심에 여름마다 업무가 고되다. 30분에서 1시간 가량 가전기구 등을 조립하는 일을 하지만 에어컨을 틀어주는 집은 10가구 중 2~3가구가 될까말까다.

이씨는 "방에 가전을 설치할 경우에는 방문을 닫고 일하는 동안 밖에서만 에어컨을 틀어놓는 경우도 있었다"며 "배려심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또 불평할 만한 일이 아닌 걸 알기에 그냥 여름에는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야겠다는 각오로 집중한다"고 말했다.

가정주부인 윤모(30)씨는 최근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에어컨 설치기사를 불러 집에 머무는 동안 에어컨을 틀고 음료수를 건네줬다가 감사 인사를 여러번 받은 것이다.

윤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오시길래 자연스럽게 에어컨도 켜고 음료수도 한 잔 드렸는데 거듭 고맙다고 하시더라"며 "에어컨 틀어주는 집이 거의 없다고 해서 조금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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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결국 노동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국 노동을 돈 주고 산다는 인식을 하고 있고, 그걸 넘어서 인격권도 침해하는 저급한 생각이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사회 지도층은 언론보도 등에 따라 점점 (타인의) 보는 눈을 의식하고 있지만, 중간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당한 것을 또 밑에다가 분출하고 싶어지게 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과거부터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찬 물 한 잔 대접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왔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없어졌다"며 "근본적 원인은 인권 의식이나 민주주의 의식 등이 머리에는 존재해도 행동으로 내재화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사회학자들은 결국 이 같은 현상을 줄일 수 있는 것은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윤 교수는 "원론적일 수 있지만 결국은 남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가정교육만이 답이다"라며 "미디어 등에서 문제를 더욱 보도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환기시켜야 한다"고 제시했다.

임 교수 또한 "마치 내가 성공하면 모든 게 다 가능할 것 같은 잘못된 인식이 아닌, 노동 존중을 배울 공감과 여유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며 "이런 갑질만 있겠느냐. 앞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확산되면 또 다른 형태의 갑질 문화가 계속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whynot8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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