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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동맹도 버릴 수 있다… '수퍼파워' 미국의 진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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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해체 위협하고 무역전쟁 촉발… 美, 전세계서 우방과 脫동맹 갈등

중국이 패권 쥐게 될 가능성 없어, 한국은 미·아세안과 새 동맹 짜야

조선일보

지난 6월 캐나다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우방국들을 대상으로 무역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각국 정상을 대표해 항의하는 장면이다. /메르켈 트위터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피터 자이한 지음|홍지수·정훈 옮김
김앤김북스|496쪽|1만8000원


지난달 13일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들을 향해 "방위비를 더 내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미국은 독자 행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나토 탈퇴를 암시하는 위협 발언이었다. 유럽의 동맹국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전후 70년간 유지돼 온 다자(多者)간 안보틀을 뿌리째 흔드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미국에 안보를 의탁하는 한국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주요 전략 요충지에서 미 본토로 퇴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대(對)테러 전쟁의 주요 협력자였던 터키와도 불화를 빚고 있으며, 한국엔 안보 무임승차론을 거론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모든 것이 트럼프의 돈타령이고 그의 '아메리카 퍼스트' 구호는 선거 전략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미국이 더 이상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할 뜻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정학 전략가이자 세계 최고의 민간 정보기업 중 하나인 스트랫포(Stratfor)에서 분석 담당 부사장을 지낸 저자가 2014년 발표한 이 책은 놀라운 예지력을 발휘해 현재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보이는 '탈(脫)동맹' 움직임을 정확히 예언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돈 씀씀이가 후했던 동맹으로서의 미국은 이제 과거의 일이 돼 가고 있으며, 이는 냉전(冷戰) 종식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자유무역의 보루였던 미국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브레턴우즈(Bretton Woods) 체제도 포기하려 한다. 1944년 브레턴우즈를 출범시키며 미국은 놀라운 선언을 했다. 자유무역 질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미국의 거대한 소비시장을 세계에 개방하겠다고 한 것이다. 미국 본토에 물건을 팔기 위해 오가는 상선들을 미 해군이 지켜주겠다는 약속도 보탰다. 이 체제 덕에 유럽과 일본은 폐허를 딛고 일어섰다. 미국은 소련과 갈등을 빚는 중국에도 자국 시장을 열었다. 물론 '한강의 기적'도 미국 시장에 물건을 내다 팔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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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도 남는 장사였다.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에서 살아남고 승리해야 했으며, 거대한 소비국가를 지탱하기 위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도 필요했다. 브레턴우즈는 비록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지만 미국은 세계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돈과, 군사력의 절반을 차지하는 완력으로 이를 지탱할 수 있었다.

더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미국은 종언을 고하고 새롭고도 낯선 미국이 등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단지 그런 미국 지도자 시대의 첫 주자에 불과할지 모른다. 사정이 바뀐 근거로 저자는 냉전 종식과 미국에서 생산되는 셰일 오일을 든다. 소련이 사라지고 등장한 러시아는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나토의 전략적 가치는 거의 사라졌다. 게다가 셰일 혁명으로 미 본토에서 향후 수백년간 쓰고도 남을 기름이 터져 나옴에 따라 중동에서 기름을 들여오는 배를 보호하기 위한 해군의 필요성도 크게 줄었다. 미국 경제는 수출에 의존하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천연 방패를 지닌 지정학적 이점까지 더해졌다. 그러니 미국은 골치 아픈 국제 문제 따윈 신경 끄고 배짱 맞는 몇몇 나라들하고만 사이좋게 지내고 싶을지 모른다.

저자는 미국이 빠진 자리를 중국이 차지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한다. 중국은 후진적인 금융 시스템, 각 지방이 산과 강으로 나뉘어 고립된 지형적 약점, 극단적 산아 제한으로 인한 청년인구 감소와 노령인구 증가가 겹치며 2040년쯤 활력을 잃고 쪼그라든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뇌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동맹이 없는 한국'의 운명이었다. 국내 일부에서 균형자론과 미·중 등거리 외교를 향후 생존 전략으로 제시한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이춘근 한국국가전략 포럼 연구위원은 "지정학적 약소국인 한국의 미래는 철저하게 강대국의 처분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센 놈'에게 붙는 게 약소국의 생존법이란 얘기다. 저자는 '미국 없는 세계'가 질서를 잃고 극단적 혼돈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이 혼돈의 시기에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인가. 저자는 태평양 국가인 대만·아세안·호주·뉴질랜드와 함께 참여하는, 작지만 효율적인 새로운 안보·에너지 동맹이라면 미국이 흥미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원제: The Accidental Super power)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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