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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사랑하는 아내에게 '한 끼의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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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조선일보

우석훈 경제학자


"'작고 예쁜 유리병 세 개', 그 글자들 위로 아내의 얼굴이 겹친다. 망고 주스를 마실 때 눈가를 스쳐 지나가던 순간적인 희열과 반짝임…. 얼마 만인가, 고개를 들고 애기처럼 웃었다. 바로 이 맛이야, 살 것 같아."

암으로 떠나간 아내, 아마도 그녀가 먹었을 마지막 음식은 망고 주스였을지도 모른다. 강창래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먼저 떠나간 아내에게 바치는 삶의 레시피 같은 책이다. 책을 읽은 지 석 달 정도 지났다. 그래도 '작고 예쁜 유리 병 세 개'라는 표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나는 이런 예쁜 말을 써 본 적이 있나? 왜 우리는 이런 예쁜 말을 아내에게 못 쓰는 것일까? 그리고 너무 늦은 다음에나 후회하는 것일까?

한국 남자 그것도 중년, 너무 오랫동안 감정을 억누르고 돈이나 버는 기계 취급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남자도 사람인데, 예쁘고 귀여운 것이 좋고, 서럽거나 슬프다는 감정이 없겠는가? 억누르고 참고, 그리고 너무 늦은 다음에야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지도 모른다. 라면 정도 끓여 먹던 사나이가 해삼탕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과정이 편치만은 않다. 아마도 사랑하는 아내와 이별하는 일이 주는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

작년에 카트리네 마르셀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라는 여성 노동에 대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강창래를 통해서 가사 노동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다시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고, 우리도 변하고 있다는 얘기 정도는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가끔 식사를 준비하는 삶, 우리도 그런 시대로 가고 있다.

부부 사이, 부모 자식 사이, 언젠가는 헤어진다. 아직 서로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자신이 준비한 밥 한 끼의 추억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한 끼 한 끼, 인생 최고의 식사가 될 수 있다. 아마 나는 아내보다 먼저 죽을 것 같다. 나이가 많다. 언젠가 홀로 남을지도 모르는 아내를 위해서, 주말에는 가급적 밥을 한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고 싶다. '작고 예쁜 유리병 세 개',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작고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뭐 해줄 거야?"라고 묻는 남편보다는 "뭐 해줄까?"라고 묻는 남편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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