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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파리 날리던 중국 화폐 공장, 때 아닌 성수기…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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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 수요 줄며 일감 없던 화폐 공장

외국 돈 대신 찍어내며 다시 활기

화폐 위탁 제조 통해 中 영향력 더 커질 듯

중앙일보

중국인들은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다 [출처 알리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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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 사람들은 지갑이 없더라. 돈을 안갖고 다닌대.
몇 달 전, 중국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한 말입니다. 백화점에서도, 식당에서도 지갑을 꺼내 계산하는 중국인들이 없었다는 겁니다. 대신 이들은 계산대 앞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듭니다.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등 소위 말하는 간편결제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휴대폰 화면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개인의 은행 계좌에서 돈이 자동으로 빠져나갑니다. 굳이 현금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는거죠. 우리에겐 아직 낯선 '지갑 없는 사회'가 중국에서는 벌써 현실이 된 듯 합니다.

그런데 요즘 중국의 화폐 제조 공장들은 때 아닌 성수기를 맞은 상황입니다.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수요를 맞추지 못할 정도로 주문이 밀려 있다고 합니다. 중국 돈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이 해외 국가의 화폐 제조를 대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화폐 제조를 담당하고 있는 국유기업 중국인초조폐총공사는 최근 잇따라 외화 제조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이들과 화폐 제조 계약을 체결한 나라는 대부분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가들입니다.

중국인초조폐총공사의 규모는 다른 나라와 차원이 다릅니다. 1만80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화폐 제조회사로 동전과 지폐를 만드는데 필요한 보안시설도 10개 이상의 운영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대표적인 화폐제조국 선진 기업들이 고용하고 있는 직원 수가 2000~3000명 수준인 것과 대조적입니다. 수년 전만 해도 중국의 국제 화폐 제조 시장 점유율은 0%였으나 지금은 30%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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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화폐 사용량이 줄며 위안화 수요가 줄었다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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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인초조폐총공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네팔, 스리랑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브라질, 폴란드, 방글라데시 등이 중국에 화폐 제조를 맡기고 있는 것으로 공개된 상황이지만, 실제로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밝혔습니다. 중국에 자국 화폐 제조를 외주 준 국가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지만 국가안보 위협 등 문제로 일일이 다 공개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중국은 지난해 초 중국인초조폐총공사가 만든 네팔의 고액권 1000루피권 지폐가 네팔 선적을 시작했고 이후 중국의 위조방지와 특수 디자인 등 화폐제조에 필요한 정교한 기술력을 일대일로 참여국가들에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서구 기업에 비해 싼 가격으로 각종 위조 방지 장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은 중국이 가진 강점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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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초조폐총공사는 태국 바트화 동전도 제작 중이다 [출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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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국제 화폐 제조 시장은 서방국들이 주도해왔습니다. 영국 화폐 제작업체 드라루(De La Rue)는 전세계 140개 국가를 회원사로 두고 있으며 독일 G&D(Giesecke & Devrient)는 60개국에 화폐를 수출하고 있죠. 드라루는 중국이 세계 화폐 제조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해외 화폐 위탁 제조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국가 주권의 상징인 화폐를 다른 나라에 맡겨 만든다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신뢰와 협력 없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리비아의 민주화 혁명 당시 영국 정부는 리비아 화폐 디나르 제조를 위탁받았던 드라루의 15억 달러어치 디나르를 압류해 카다피 정권에 큰 타격을 줬습니다.

물량공세로 각국 화폐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 중국. 세계 경제를 향한 중국의 또 다른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차이나랩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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